대홍수 덮친 獨... 9월 총선 최대 쟁점은 '기후변화 대응능력'

입력
2021.07.19 19:00
집권 기민당, 예고에도 홍수 못 막아 '책임론'
"온 나라가 우는데 혼자 웃어" 당 대표도 뭇매
기후변화 천착해 온 녹색당, 지지율 상승 계기 
"정권 교체냐, 정치적 안정 추구냐 갈림길"


9월 독일 연방하원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의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근 독일 서부 지역을 휩쓴 최악의 홍수로 16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함에 따라,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 대처 능력을 키우는 게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이번 홍수가 기후변화로 인한 참사라는 데엔 대체로 이견이 없다. 18일(현지시간) 피해 지역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동안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이 크다”며 “기후변화와의 싸움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CDU·기민당) 대표도 “독일을 기후(위기)에서 안전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대표 역시 “극단적 기상 현상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스레 두 달 뒤 총선 향배를 좌우할 핵심 변수는 기후변화 대처 능력이 됐다. 일단 집권 여당(기민당)은 직격탄을 맞았다. 폭우가 예고됐음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정부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라셰트 대표도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홍수 피해 현장을 찾았다가 일행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활짝 웃는 장면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피해 상황이 심각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주지사이기도 하다. 독일 일간 빌트는 “온 나라가 우는데 라셰트만 웃었다”며 “차기 총리 유력 후보인 그의 위기 대응 능력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특히 라셰트 대표는 ‘비전’마저 제시하지 못했다.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기후변화 관련 입장 변화를 묻는 질문에 “나는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주지사”라며 “이런 일(홍수 피해)을 겪었다고 해서 정치가 바뀌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녹색당의 환경 정책에 강력히 반대하며, 산업 육성에만 힘써 온 라셰트 대표의 입지가 이번 홍수로 위태로워졌다”고 평가했다.

반면 녹색당엔 지지율 상승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평소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앞세워 온 만큼, 이번 기회에 '수권 정당'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다는 얘기다. 40세 여성 배어복 대표가 이끄는 녹색당은 과거의 급진정당 이미지에서 탈피해 합리적이고 참신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올해 초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배어복 대표의 표절 의혹 등이 불거져 지지율이 2위로 떨어졌다.

사회민주당도 표심 잡기에 나섰다.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올라프 숄츠 사민당 대표는 이재민들에게 3억 유로 이상의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물론 현 시점에서 총선 결과를 예측하는 건 무리다. 칼 루돌프 코르테 뒤스부르크 에센 대학 교수는 “이번 사태로 최근 지지율이 떨어진 녹색당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겠지만, 오히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정치적 안정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여당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 내 정당별 지지율은 기민·기독사회당(CSU) 연합이 29%로 선두이고, 녹색당(19%)과 사민당(16%)이 뒤를 잇고 있다.

다만 독일 선거에 재해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전례가 있긴 하다. 앞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2002년 8월 홍수 피해 지역 현장을 방문해 복구 작업을 직접 돕고,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등 재난 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해 재선에 성공했다.

강지원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