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권 현실도 드러내자"… 美, 中·러에 맞서려 고육책

입력
2021.07.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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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국무장관, 각국 외교관에 긴 전문 보내
"고통스럽지만 비판자 무장해제 위해 불가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자국의 민주주의ㆍ인권 현실도 감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다른 나라 일에 간섭할 자격이 있느냐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격에 맞서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려면 고육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16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날 각국 주재 미 대사관에 보낸 장문의 전문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의 필요성을 거론할 때 미국의 결함을 인정하라는 지시를 자국 외교관들에게 내렸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전문에서 블링컨 장관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개념이 포퓰리스트(대중에 영합하는 정치인)와 독재 세력의 도전에 직면했다며 미국 역시 정치적 양극화와 허위 정보,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 수준 탓에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하려 할 때 미 외교관들은 우리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나라에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이는 우리의 결함을 양탄자 밑으로 쓸어 넣어 숨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맞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이런 태도가 고통스럽고 심지어 추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정직함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깎아내리려 미국의 결함을 활용하는 비판자 및 회의론자들을 무장 해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에 미국의 결함이 무엇인지, 비판자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맥락은 분명하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중국과 러시아 등 라이벌을 공격할 때 바이든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가치다. 그러나 과연 미국이 다른 나라에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냐는 게 이들의 반박이었다. 특히 지난해 미 공권력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올초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의사당 난입 사건 등은 미국의 오래된 인종 차별과 취약한 민주주의 토대를 드러냈다.

폴리티코는 이 전문이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이라는 추상적 선언을 구체적인 목표로 변화시키려는 바이든 정부의 시도라며, 대체로 인권 문제 비판을 피해 온 트럼프 정부와 전략적으로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반성이 공화당과 보수 진영의 반발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 매체는 내다봤다. 바이든 정부의 유엔 인권 조사 수용 의사 표명에 대한 공화당 일각의 반응이 근거다. 예컨대 블링컨 장관이 최근 미국 내 인종 차별과 소수자 인권 문제 조사를 받아보기 위해 유엔 특별조사관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쿠바를 압박하기보다 미국인을 때리는 데 바이든 정부가 더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을 가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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