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윤용하(1922.3.16~ 1965.7.23)는 노래가 지닌 치유의 힘과 선동적 에너지를 극명하게, 두루 활용한 음악인이었다. 그는 1949년 위당 정인보가 지은 가사에 단정한 두 토막 형식의 행진곡풍의 곡을 붙여 광복절 노래를 지었고, 1951년 한국전쟁 피란지 부산의 가난 속에서 서정적인 가곡 '보리밭'을 작곡했고, 1955년 동요 '나뭇잎배'로 전쟁으로 찢긴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황해도 은율의 한 가톨릭 민족주의 집안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옹기장이였던 아버지를 따라 보통학교 5학년이던 12세 때 만주 봉천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해 봉천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가톨릭 교회에서 기악을 익힌 그는 봉천방송국 관현악단 지휘자였던 일본인의 눈에 들어 화성과 대위법 기초를 익힌 뒤 독학으로 성가 합창곡과 동요 등을 작곡하곤 했다. 해방 후 만주 용정사범학교에서 음악강사로 일했고, 결혼한 뒤 함흥 영생여자중학교에서도 교편을 잡았지만, 공산정권의 예술 도구화에 환멸을 느껴 1946년 월남했다.
그는 음악인들과 함께 음악가협회(부회장)를 만들어 음악을 통한 민족의식 고양 운동 등을 전개했다. 그의 광복절 노래는 정부가 국경일법으로 광복절을 제정(1949년 10월)하면서 지은 노래였다. 월남 후 한국전쟁 땐 종군 음악인으로 '사병의 꿈' 등 여러 편의 군가를 작곡했다. '보리밭'의 가사는 2년 연상 동향 선배인 시인 박화목이 지었다. 난리통에 썩 알려지지 못한 그 노래는 그가 작고한 지 6년 뒤인 1971년 가수 문주란의 동생 문정선이 대중가요로 편곡해 부르면서 국민가곡이 됐다.
노래 '보리밭'의 운명처럼, 생전의 윤용하는 해방된 조국으로부터도, 대중에게서도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아내와 1녀 1남을 둔 그는 평생 오르간 하나 마련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고, 만 43세 되던 1965년 서울 중구 필동의 단칸 셋방에서 간경화로 숨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에야 그에게 문화훈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