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찾는 이유 다양한데… 정부 제시한 '익명출산제' 논쟁

입력
2021.07.19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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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년간 베이비박스 영아유기 13건 판결문 보니
"경제적으로 키울 형편 안돼" "혼전·혼외 임신" 등
베이비박스 대신할 보호출산제 도입 두고 갑론을박
입양단체 "생명 보호"… 미혼모단체 "양육 포기 권장"

2015년 3월 수도권의 한 교회 앞. A씨가 8개월 된 아이를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눕혀둔 채 떠났다. 곁에는 '아기가 뇌병변장애가 있는데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키우기 힘들었다'는 쪽지가 놓여졌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다행히도 교회 사람들이 곧 아이를 발견했다.

홀로 집으로 돌아 온 A씨는 아이에 대한 걱정에 맘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몇주가 흘렀고, A씨는 아이를 다시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이와 친자 관계부터 확인해야 했다. 경찰에 그간의 사정을 털어놨지만 '며칠 간 아이를 버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A씨는 영아 유기 혐의로 입건돼 재판에 넘겨졌고, 법원은 2016년 8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것"이라면서도 "다행히 아이를 도움의 손길이 닿는 곳에 두고간 점, 피고인이 범행 후 자책하다가 자수한 점을 참착했다"고 밝혔다.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설치 초기 '영아 유기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베이비박스가 최근 베이비박스 앞 공사 자재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 20대 여성의 아이로 인해 다시금 논쟁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정부는 사건 발생 후 베이비박스를 대신할 보호출산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역시 "영아 유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사정을 깊이 살피지 않은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경제적 능력 안 돼' 가장 큰 이유...다시 찾아가는 부모 많아

실제 한국일보가 2015년부터 올해 5월까지 베이비박스를 키워드로 한 영아유기 사건 등 1심 판결 13건을 분석한 결과, 부모들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피치 못할 사정은 각양각색이었다. '아이를 기를 경제적 능력이나 가정 환경이 안 돼서'라는 이유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혼전·혼외 임신'이 4건, '다른 보육·입양시설 절차가 복잡해서'와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서'가 각각 2건이었다. 물론 '가정 형편이 안 되는 상황에서의 혼전 임신' 등 중복된 사연의 부모들도 존재했다.

법원은 이들 중 극소수에게만 실형을 선고했다. A씨의 경우처럼 '도리를 져버렸다'는 식으로 도덕적인 면을 꾸짖기는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유기의 전후 사정을 대체적으로 감안했기 때문이다. 또한 베이비박스에 유기해 경찰에 입건되는 부모 상당수가 아이를 되찾기 위해 자수한 이들이라는 점, 비교적 안전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한 부모들라는 점 등을 언급하면서 "근본적 학대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한 재판부가 대다수였다.

실제 판결문 안에는 다시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형사처벌을 감수했던 부모들 다수가 등장한다. 예컨대 2017년 수도권의 한 교회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갔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은 B씨는, 유기 두달 후 아이를 찾겠다면서 직접 경찰서에 자수를 한 경우였다.

대안 추진되는 보호출산제...찬반 팽팽히 엇갈려

물론 위태로운 상태로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갓 출산한 아이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수도권의 한 베이비박스에 두고 가 결국 숨지게 한 C씨가 그랬다. 그에겐 2019년 8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이 내려졌다.

정부와 국회는 현재 베이비박스의 대안으로서 보호출산법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자녀를 낳은 친모가 입양 의사가 있다면 지자체에 자녀를 인도하고, 의료기관은 임산부 신원을 비식별화(익명화)해 비밀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놓고 가야 하는 부모들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단 의도에서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입양·학부모 단체 등에서는 환영의 목소리를 낸다. 시민단체 '지켜진 아동의 가정보호 최우선 조치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대책"이라고 법 추진을 찬성했다. 반면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은 "지원 제도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는 것은 양육을 포기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