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로금 명목의 5차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주는 것이 16일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이다. 지난달 당정이 도출한 합의는 '소득 하위 80% 가구에 1인당 25만 원 지급'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상위 20%의 표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민주당은 2주 만에 약속을 깼다.
#2020년. 1년 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21대 총선을 열흘 앞둔 지난해 4월 6일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일주일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소득 하위 70% 지급안’을 뒤집은 것이었다.
1년 3개월의 시차를 두고 민주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몰아붙이는 모습이 ‘평행이론’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까지의 시나리오는 거의 판박이다.
①민심 이반을 우려한 민주당이 당정 합의 파기를 검토한다. ②제1야당 대표가 “모든 국민에게 돈을 주자”고 동조한다. ③이를 빌미로 민주당이 보편 지급을 밀어붙인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민주당 입장을 끝내 수용했다. 이번에도 민주당 손을 들어 주면, '평행이론'이 완성된다.
지난해 3월 정부는 '소득 하위 50%에 가구당 최대 100만 원'을 제시했고, 민주당은 “중산층까지 넓혀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소득 하위 70%에 가구당 최대 100만원 의 절충안이 채택됐다.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만족해했다.
상황은 다르게 굴러갔다. 4·15 총선을 앞두고 '선별 지급은 상위 30% 표심 포기'라는 논리가 민주당에서 힘을 얻었다. 이해찬 대표는 4월 6일 “모든 국민을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전 국민 지급을 발표했다. 청와대, 정부와 제대로 상의하지 않은 채였다.
요즘 상황도 비슷하다. 이번에도 여당이 약속을 어겼다. 당내 최대 계파 ‘더좋은미래’ 등이 집단 행동에 나서자, 당 지도부는 13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당론을 바꾸었다.
민주당은 당정 합의를 뒤집을 결정적 명분을 국민의힘에서 찾았다. 이해찬 대표가 전 국민 지급안을 발표하기 하루 전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 원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매표'라고 비판하던 통합당의 돌변을 민주당은 정부를 압박하는 호재로 활용했다.
황 전 대표의 역할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넘겨 받았다. 이 대표는 지난 12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의 만찬 회동에서 '전 국민 지급'에 합의했다. 국민의힘 다수 의견인 '선별 지급'을 뒤집은 '대형 사고'였다. 송 대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다음 날 전 국민 지급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당정 합의를 깬 이후 청와대 설득에 집중했다. ‘정부 곳간지기’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우회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문 대통령은 ‘총선을 앞둔 여당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보편 지급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5차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에 대해서도 철벽을 치진 않은 상태다. 지난달 당정 논의 과정에선 전 국민 지급에 난색을 표했지만, 민주당의 당론 변경 이후 물러서는 기류가 감지된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홍 부총리의 권위를 세워 주면서도 민주당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거중조정' 역할을 맡았다는 얘기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주말 당정청이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