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서유럽과 북미에 기후 재앙이 덮쳤다. 폭우에 이은 홍수로 독일과 벨기에에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고, 폭염이 강타한 미국 서부와 캐나다에는 초대형 산불이 번지고 있다. 둘 다 기후 변화 때문이다. 이 문제만큼은 정치적 이견을 제쳐두고 서로 도와 대응하자고 미국과 러시아가 의기투합했다.
16일(현지시간) 외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14일 밤부터 시간당 최대 200㎜ 가까이 쏟아진 폭우로 불어난 물 탓에, 독일 라인란트팔츠주(州)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각각 최소 60명과 4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근 벨기에에서도 사망자 23명이 확인됐다. 적어도 126명이 ‘수마(水魔)’에 희생된 것이다.
피해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실종자가 최소 수십 명인 데다 현재 통신이 끊겨 연락 두절 상태인 폭우 집중 지역 주민이 1,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남부와 벨기에 등에는 이날 밤까지 비가 더 올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안드레아스 프리드리히 독일 기상청 대변인은 “100년간 보지 못한 비가 홍수와 건물 붕괴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북미 서부 형편은 대조적이다. ‘화마(火魔)’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15일까지 이미 12개 주에서 초대형 산불만 71건이 발생, 4,047㎢ 면적을 태웠다. 서울시의 6.7배 크기다. 특히 오리건주 중남부에서 열흘 전쯤 발생한 ‘부트레그 화재’는 현재 진행 중인 산불 중 최대 규모다. 919㎢를 초토화했다. 가옥 21채가 전소됐고, 주민 2,000여 명이 현재 대피한 상태다. 인근 워싱턴주와 아이다호 상공까지 뒤덮은 연기는 위성에서도 포착될 정도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주 산불 ‘딕시’도 계속 번지고 있다. 2018년 86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라다이스 산불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벌써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나 더 넓은 지역이 불에 탔고,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양상은 판이하지만 두 기상 이변 모두 기후 변화가 배경이라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서유럽 ‘물 폭탄’은 정체된 저기압대 ‘베른트’가 품은 습기에 고온이 작용한 결과다. 더욱이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가 함유할 수 있는 수증기량이 늘어난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지난달 독일 평균 기온이 섭씨 19도로, 1961~90년 6월 평균보다 3.6도 높았다고 전했다.
북미 산불의 원인인 폭염과 가뭄도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됐다. 특히 ‘열돔(고기압이 정체하며 지붕을 만들어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현상)’을 일으키는 제트기류의 약화는 기후 변화의 악영향 중 하나다. 산불은 기온 상승을 부추긴다. 악순환이다.
이런 지구적 재난에 대응하려면 국가 간 공조밖에는 방법이 없다. 사사건건 옥신각신하는 미국과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마침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기후 특사 존 케리가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후 특사인 루슬란 에델게리예프와 회담한 뒤 기후 변화 관련 협력을 위해 정치적 논쟁은 일단 유보하자는 취지의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 등이 전했다. 케리 특사는 지금껏 러시아를 찾은 바이든 행정부 관료 중 최고위급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