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동료처럼… 나도 이렇게 평가?” 서울대는 청소노동자 추모 중

입력
2021.07.16 21:30
중앙도서관 터널에 추모공간 조성
생전 업무환경 담긴 사진·추모글 전시
학생들 "학교가 책임 다해야" 촉구


업무 태도, 협업 능력, 친절도, 청소도구, 매초작업, 게시판. 그동안 이렇게 매기고 있었구나. 금방 닦고 나와도 또
더러워지는 게 우리 청소 환경인데...
서울대 자연과학대 청소노동자 A(61)씨

지난달 교내에서 숨진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씨를 애도하는 메시지가 그의 일터였던 학교 곳곳을 채우고 있다. 이씨가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고, 새로 온 팀장은 학생 기숙사 청소를 담당하는 이씨와 동료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에도 학교 본부가 명확한 사과나 대책을 내놓지 않자, 단과대 학생회 등 학내 단체들은 학교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내걸었다. 학생들과 다른 건물 청소노동자들은 이들이 마련한 추모공간에서 고인을 애도했다.

"물품신청서 못 써 학교 떠난 동료 생각나"

16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터널 내벽에는 숨진 이씨의 생전 업무환경을 짐작하게 하는 사진들이 붙었다. 전날부터 진행되고 있는 추모 사진전이다. 행사를 기획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의 이재현 학생대표는 "고인의 죽음 이면에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갑질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학생들이 열의를 갖고 공간 설치에 자원했다"고 밝혔다.

오후 3시 30분쯤 추모 사진 앞에는 퇴근길 학내 청소노동자들이 서 있었다. 2013년부터 서울대에서 일했고 현재 자연과학대 건물을 청소하고 있다는 A(61)씨는 벽에 붙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고 있었다. 고인이 매일 스스로를 평가해 작성했다는 '일일 근무성적평가서'가 전시됐다기에 "대체 무슨 기준으로 평가를 했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한다. 노조는 팀장 B씨가 지난달 초 부임해 도입한 평가제도라고 주장한다. 평가 항목을 하나씩 읊던 A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소라는 게 해놓고도 잠깐만 있으면 소용없어지는 일이잖아요. 나도 이런 세세한 기준으로 평가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A씨는 B 팀장 주관으로 고인이 치렀던 필기시험지를 발견하곤 수년 전 학교를 그만둔 동료 청소노동자 얘기를 꺼냈다. 글쓰기에 서툴던 동료는 당시 업무에 필요한 물품 항목을 직접 써내는 일이 부담스러워 정년이 남았는데도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고 한다. A씨는 "우리 청소노동자 중에는 사실 그런 사람들이 많다"며 "고인은 (학교 측 주장대로)필기시험을 잘 봤다고 할지라도, 글을 모르는 동료들이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비참했겠나"라고 말했다.

"얼마나 더 많은 목숨 잃어야 하나" 절망한 학생들

분노한 학생들의 발걸음도 줄을 이었다. 이 학교에선 2년 전에도 60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돼 과로사 논란이 일었다. 자유전공학부 2학년 양모(20)씨는 "내가 입학하기 전에도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있었는데, 그동안 업무 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답답하다"며 "(학교 측이)유족과 진실 공방을 벌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전시 공간 바로 옆 추모 게시판에는 "학생 196명이 생활하는 기숙사동을 홀로 청소하고 계신 줄 몰랐다" "서울대는 고인을 더 이상 능욕하지 말고 노조 요구에 응답하라" 등 학생들이 작성한 문구가 포스트잇으로 다닥다닥 붙었다.

추모공간과 10m가량 떨어진 옆 공간엔 단과대 학생회 등에서 학교 측 대응을 규탄하기 위해 작성한 대자보들이 늘어섰다. 사회학과 학생회는 대자보를 통해 "서울대 본부는 구성원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즉각 사과하라"며 "산재 공동조사단 구성 등 유족 및 노조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여라"라고 요구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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