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진맥진 K방역

입력
2021.07.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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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15일 낮 서울 관악구의 한 임시 선별진료소에 파견됐던 40대 여성 공무원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에게 검체 검사 방법을 안내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익숙지 않은 방호장비를 착용한 채 시민들을 안내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4도였고 신규 확진자는 500명 이상 쏟아져 나왔다.

□ 방역 최전선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의료인력, 행정인력들이 탈진해 가고 있다. 1년 반 이상 계속된 코로나 사태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4차 유행까지 닥쳤기 때문이다. 일찍 찾아온 폭염도 복병이다. 코로나검사, 역학조사, 이상반응 접수까지 각종 업무를 맡고 있는 전국 256개 보건소 인력들은 정신력으로 버티는 상황이다. 지난 5월 코호트 격리 업무를 했던 부산의 한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은 업무전환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게 보건소 현장 직원들의 말이었다.

□ 최근 보건의료노조가 펴낸 수기집 ‘코로나와 싸운 1년 우리들의 땀과 눈물’에는 엄청난 업무 중압감 속에서 환자들을 돌봐온 간호사, 의료기사들의 사연이 담겨있다. 1, 2시간만 입고 있어도 속옷까지 푹 젖는 방호복을 입고 근무해야 하는 체력 부담도 있지만 일부 환자와 가족들의 ‘갑질’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컸다. 특정 브랜드의 햄버거를 사달라고 요구하는 환자, 음압병실이 답답해 퇴원시켜달라며 병실 문을 침대로 가로막고 면도기로 손목을 긋겠다는 환자 앞에서 내색 않고 간호에 전념해야 했다. 안 그래도 격무에 시달리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직들의 업무도 코로나 이전보다 2배가량 늘었다.

□ 임명묵은 최근 시사평론집 ‘K-를 생각한다’에서 지난해 한국 방역행정의 성공을 ‘총력전 동원체제’의 승리라고 꿰뚫어봤다. 수많은 의료진들이 엄청난 속도로 검사를 수행했고, 의심자들을 분류해 추가 확산을 차단했다. 방대한 행정부담을 질 일선인력과 시스템, 정부가 언제든 징발할 수 있는 수많은 남성의사(군의관, 공중보건의)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또다시 대유행의 파고다. K방역의 최전선 인력들이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