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검거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내달리고 몸을 던지고 또 내달린다. 모두가 경찰 배지만 달고 몸을 사릴 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의 구현을 위해서라면 규칙도 어긴다. 경찰서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법 집행을 한다면서 소동을 일으켜서야 되겠냐는 지적과, 범죄자를 잡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잡음이라는 옹호가 맞선다. 영화 ‘메이저 그롬: 플레이그 닥터’의 형사 그롬(티콘 지즈네프스키)은 한국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 주인공 강철중(설경구)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넷플릭스에서 '메이저 그롬: 플레이그 닥터' 바로 보기
영화의 배경은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여느 대도시처럼 크고 작은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힘겹게 범인을 잡아도 돈과 권력에 굴복한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다. 재벌 2세 그레치킨이 대표적이다. 술 마시고 함부로 스포츠카를 운전하다 어린아이를 치어 숨지게 했다. 그롬이 갖은 애를 써서 잡았는데, 판사는 무죄 판결로 그를 풀어줬다.
여론이 들끓는 사이 그레치킨이 잔혹하게 살해된다. 살인범은 그레치킨이 화형 형식으로 죽임 당한 모습을 영상에 담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대중은 열광한다. 경찰서는 비상이 걸린다. 대중의 뜨거운 반응에 답변하듯 살인범은 추가 범죄를 이어간다. 범죄 대상은 대중의 공분을 샀던 부자들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재력으로 법망을 피해 다녔던 이들이다. 대중은 ‘플레이그 닥터’를 자처하는 살인범을 정의의 사도로 추앙한다. 신뢰 잃은 사법 제도가 부른 기현상이다.
그롬은 살인범을 추적한다. 수습 경찰 드미트리(알렉산드르 세테이킨)가 도우려 하나 그롬은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 실마리를 잡아가는 데 연방정부 경찰이 끼어든다. 그롬은 냉장고 분실 사건을 맡게 된다. 하지만 집요한 그롬이 수사를 중단할 리 없다. 살인범의 행적을 쫓다가 IT 부호 세르게이(세르게이 고로쉬코)를 만난다. 고아로 자라 거대한 부를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 세르게이는 자선사업으로도 유명하다. 그롬은 정의로운 세르게이가 마음에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언행이 미심쩍다.
그롬은 수사를 계속하지만 정의를 내세운 살인은 계속된다. 그롬 등은 사회 체계가 흔들릴 걸 우려한다. 영화는 규칙을 종종 위반하는 그롬, 법치를 무시하는 살인범을 대치시키며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살인범은 익룡 모습을 바탕으로 한 히어로 복장을 하고 범죄를 이어간다. 위장을 위해서라지만 자신이 정의구현을 하고 있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히어로 복장은 할리우드 영웅 서사를 비트는 방편으로도 활용된다. 할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악당이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주장하며 영웅 행색을 한다. 그런 악당을 잡는 이는 열정만이 무기인 형사다. 슈퍼 히어로라는 허황된 존재 대신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는 상식적인 보통 사람이라고 영화는 에둘러 표현한다. 할리우드식 영화에 대한 러시아식 대응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