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신생국이 겪는 통과의례 중 하나는 부패한 지도자의 사법처리 문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전직 대통령의 수감이 결국 폭력 사태로 번졌다. 1994년 흑인정권 탄생 이후 27년 만에 법의 지배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다. 7일 제이콥 주마(79) 전 대통령 수감이 부른 반발 시위는 약탈, 방화로 확산하며 수십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체포됐다. 군이 진압에 나섰지만 거리에선 차량이 불타고 LG와 삼성 물류창고까지 털렸다.
□ 주마는 부인하지만 재임 중 정부 금고에서 수십억 달러가 사라졌다. 부통령 때도 그는 무기중개로 수십억 달러를 챙기려 한 의혹을 받았다. 그럼에도 부패조사에 응하지 않자 대법원은 법정모독죄로 15개월 수감을 명했다. 정치음모의 희생양이라하며 지지자들을 자극한 주마는 최종 시한 40분을 남기고 자진 수감됐다. 이번 사태는 전직 대통령의 높은 인기가 낳은 비극이기도 하다. 유일한 줄루족 출신 대통령인 주마의 인기는 개인 숭배에 가깝다. 상황의 심각성은 시위 성격이 가난과 부패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는 데 있다.
□ 주마는 흑백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반대로 넬슨 만델라와 함께 수감생활을 한 민주주의 지도자다. 정규 교육은 받은 적이 없으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며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집권 10년 동안 경제는 잿빛이 되고 불평등은 심화했으며 부패는 만연했다. 35세 이하 청년 거의 절반이 놀고 있고, 흑인 3분의 2는 빈곤 상태에 빠져 있다. 세계은행이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지목한 남아공의 이런 상황은 무엇보다 부정과 부패가 가져온 비극이다.
□ 국부(國父) 만델라는 여전히 남아공 민주주의를 상징하지만 후계자들은 무능했고, 그의 도덕성을 판 부정부패로 배를 채웠다. 만델라가 주창한 ‘무지개 국가’를 위협하는 인물이 민주주의 투사라는 점도 아이러니다. 적어도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는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 2명이 투옥 중이고, 정권 인사 3명이 법적 절차에 반발해 야당 대선주자로 나오는 한국의 민주주의 풍경이 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