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동화약품, 몽고간장의 공통점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장수기업이란 점이다. 전 세계 기업 평균 수명은 13년에 불과하며, 30년이 지나면 기업의 80%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100년이 넘게 존속하고 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기업체뿐 아니라 농업에도 이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이윤현 배 명인의 ‘현명농장’이다.
이윤현 명인의 조부는 1921년 서울 압구정동에서 ‘배’와 인연을 맺었다. 지금의 압구정 현대아파트 78동과 현대백화점 부지에서 3대를 이어 농사를 짓던 그는 1972년 경기 화성시로 내려왔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지금 그 땅을 가지고 있었으면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라 아쉬워하지만, 이 명인은 손톱만큼의 미련도 없다. ‘행복한 과일’을 재배하는 ‘행복한 농부’가 더 큰 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윤현 명인의 ‘현’자와 아내 이명자씨의 ‘명’자를 따서 ‘현명농장’이라는 이름을 지은 만큼, 그는 배나무를 자식처럼 사랑한다. “창고가 비어도 자식만은 굶기지 않는 것이 부모라 하지요. 제게는 배나무가 자식이나 진배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배 농가 중 유일한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이다. 1972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농사일기를 쓰며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했다. 자연재해는 물론, 애써 키운 배가 까치의 먹이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재배기술과 설비를 개발했고, 특허출원만도 40여 건에 달한다. 덕분에 이 명인은 ‘화성의 에디슨’이라 불린다. 부창부수라고, 부인 역시 배즙, 배 고추장, 배 조청, 배 깍두기, 건배 등 배를 활용한 2차 가공품 연구에 열심이다.
현명농장의 배나무 터널 아래 들어서면, 터져 나오는 탄성을 금치 못한다. 배꽃이 피는 봄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가을은 물론이고 푸른 잎이 무성한 여름과 가지만 남은 겨울에도 감탄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과수원은 사계절 내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과수 전문가들도 이러한 전천후 재배기술이 적용된 과수원은 드물다며 부러워할 정도다.
한때는 스토리를 파는 농장으로도 유명했다. 고품질의 배 판매를 넘어, 소비자를 초청해 ‘과수원 음악회’라는 감성 마케팅을 통해 배에 대한 사랑과 이야기를 함께 더하는 것이다. 덕분에 농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단골이 되고, 그의 배는 유명 백화점과 대형 유통점에서 좋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배 소비가 감소하고, 농촌의 손발이었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입국 지연, 코로나19로 인한 자원봉사자 감소 등 가중된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는 그의 농장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게다가 올 초에 농장 일을 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진 후유증 때문에 전보다 활발한 활동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50년이 넘도록 농삿길에 동행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농업인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현명농장이 100년 동안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 건강하고 소중한 먹거리, 즉 ‘행복한 과일’을 재배하는 ‘행복한 농부’가 되는 것이었다. 현명농장이 배꽃 터널의 100년 역사를 넘어 200년, 그 이상의 농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