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도 RM도... 주식 대신 그림 사는 MZ세대

입력
2021.07.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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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코인서 아트테크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감독 겸 배우로 국내에도 친숙한 중화권 스타 저우제룬(周杰倫·주걸륜) 집은 '작은 미술관'이다.


"부동산 대신 그림에" 공연 수익 톱10 남자 가수의 고백

그는 유리로 만든 액자형 공간을 거실 벽에 따로 만들어 미국의 유명 화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그림을 걸어뒀다. 풍경화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작가 피터 도이그의 작품도 있다. '화가들의 화가'로 불리는 도이그의 그림은 시장에 나오면 많게는 2,900만 달러(약 330억 원)에 팔린다. 저우제룬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지난 13일 본보와 서면으로 만난 그는 "어머니가 미술 선생님이었다.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면, 내가 옆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며 "어머니로부터 예술가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미술 수집가가 된 배경을 들려줬다. 세계 남자 가수 중 공연 티켓 매출이 일곱 번째(9,300만 달러·2019)로 많은 가수로 성장한 저우제룬은 공연 수익 대부분을 그림 구입에 쓴다고 한다. 그는 부동산 대신 그림에 투자한다.




주 투자자 베이비부머→MZ세대로

전시관에서 눈으로만 즐기던 예술 작품이 재테크의 수단(아트테크)으로 각광받고 있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 투자자로 떠올랐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이 낸 '2021 아트마켓 보고서'를 보면, 100만 달러(11억 원) 이상 자산가 컬렉터 2,596명 중 56%가 20~30대다. 5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MZ세대로 투자층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20~30대 K팝 스타들도 예술로 재테크를 하는 추세다. 미국 유명 미술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미술 컬렉터 50인'에 뽑힌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은 미술계 '큰손'이다. 그가 제주에서 운영하는 카페엔 미국 작가인 제프 쿤스의 설치미술인 '벌룬 독'을 비롯해 독일 추상화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P2 Haggadah'가 전시돼 있다. 틈만 나면 전시장을 찾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은 윤형근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단 스타나 부유한 자산가만의 일은 아니다. 유행에 누구보다 민감한 MZ세대가 자산에서도 '나', 즉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미술 수집에 몰리면서 저변이 넓어졌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온라인에서 거래된 미술품 중 1,000만 원 이하가 과반인 59%를 차지했다. MZ세대의 경매는 올 1~3월에만 6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건 대비 20% 증가했다. 본보가 서울옥션에 의뢰해 최근 2년 동안 온라인 경매 낙찰 경향을 분석한 결과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새로 시장에 나타난 MZ세대 수집가는 국내외 현대미술품에 관심이 많고, 구매하는 작품의 금액대는 1,000만 원대"라며 "온라인 경매에 특히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고 말했다.

MZ세대 유입으로 시장도 부쩍 커졌다. 지난 1~6월 서울옥션 경매 거래 총액은 약 697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거래 총액 436억 원을 6개월 만에 160% 초과했다.


왜? 세제 혜택·주식보다 덜 불안·문화 플렉스

MZ세대 재테크의 관심은 주식과 코인에서 예술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변화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 ①취득세와 보유세 부담이 있는 부동산과 달리 예술 작품을 거래할 땐 양도세만 내면 돼 세제 혜택이 많고 ②주식보다 덜 불안하며 ③문화적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미린이(미술투자 초급자)' 김윤정(40)씨는 "부동산 재테크 카톡방에서 작년부터 아트테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부동산 규제가 많아지다 보니 다른 돈벌이 수단을 찾았고, 처음엔 987명이 가입된 아트테크 단톡방에 가입해 '눈팅'으로 시작,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 같은 경우 양도세도 적고, 세금 혜택이 많다는 정보 등을 접하면서 투자했다"고 말했다. 5,000만 원의 그림을 사 9,000만 원에 팔았다고 치자. 이 경우 양도가액이 1억 원 이하라 필요경비율 90%가 적용된다. 필요경비 8,1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10%인 900만 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


펀드처럼 '달항아리' 공구... NFT 아트 고객 평균 연령 38세

김씨는 소액 투자자들끼리 돈을 모아 펀드처럼 미술품을 사 이익을 나누는 공동구매부터 시작했다. 최영옥 작가의 '달항아리' 세 작품 구입에 1,000만 원을 썼고, 그해 연 12%의 수익을 냈다. 이 펀드는 목표 수익을 달성한 뒤 1년 만에 깨졌다. 김씨는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은 그림으로 자금이 몰려 석 달 만에 몇 배 수익을 보는 사람도 있더라"며 "그림이나 조각이 고급문화라는 인식이 있어 투자에 자기만족이 큰 게 장점"이라고 했다.

미술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 아트'는 MZ세대의 진입 장벽을 더욱 낮추고 있다. NFT 아트는 실물이 아닌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시각예술로, 블록체인 암호화 기술로 콘텐츠에 고유한 표식을 부여한 디지털 자산이다. 시장 형성 초기 부풀려진 가격 등 투자 위험 요소도 많지만, MZ세대의 관심은 뜨겁다. 경매사 크리스티에 따르면 올 상반기 NFT 경매에 등록한 고객 중 73%가 신규 고객으로, 평균 연령은 38세였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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