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군 특수부대원 22명을 공개 장소에서 총살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동영상이 공개돼 지구촌이 충격에 빠졌다. 미군이 대부분 철수한 아프간을 탈레반 세력이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안보 공백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달 중 재개될 예정인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협상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은 “탈레반이 지난달 16일 투르크메니스탄 접경 지역 마을인 파르야브주(州) 다울라트 아바드에서 아프간 특수부대원들을 집단 처형했다”며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과 목격자 증언을 보도했다. CNN이 입수했다는 이 영상에서 아프간 군인들은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외치며 건물 밖으로 나온다. 현장에 있던 주민들이 “제발 쏘지 말라”고 간청하기도 한다. 잠시 후 흔들리는 화면과 함께 총을 난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남성 10여 명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참혹한 장면이 이어진다. 모두 비무장 상태인 군인들이다.
목격자들은 당시 이 마을에서 아프간 특수부대와 탈레반이 2시간가량 전투를 벌였으며, 아프간군의 탄약이 다 떨어져 탈레반에 포위된 상황이었다고 CNN에 증언했다. 한 주민은 “탈레반이 군인들을 거리 한가운데에 몰아넣고 총을 쐈다”고 말했다. 현지 적십자사도 아프간 특수부대원 22명의 시신을 수습한 사실을 확인했다.
CNN은 “그동안 탈레반이 투항한 아프간 군인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집에 돌아갈 비용까지 챙겨 줬다고 선전해 온 것과는 극명히 대조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도 “이 끔찍한 장면은 엄연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해당 영상이 조작된 가짜라면서 오히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선전물”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아프간 군인 24명은 아직 생포 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이 아프간 주둔군 철수에 나선 이후, 탈레반은 아프간 현지에서 급속하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 아프간 내전 상황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장기전쟁저널’은 10일까지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이 212곳인 반면, 아프간 정부의 통제 지역은 76곳, 양측의 분쟁 지역은 119곳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훈련받은 아프간 특수부대는 고작 1만1,000명 규모로, 미군 지원 없이 탈레반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해 4월 이후 중단된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협상이 재개될 조짐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AP통신은 “아프간 대표단과 탈레반 대표단이 16일쯤 카타르 도하에서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부터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탈레반 포로 석방, 새 정부 체제 관련 이슬람 율법 등에서 입장 차가 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탈레반의 아프간군 처형 문제가 국제사회에 파장을 낳으면서 협상이 한층 더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