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억울할 수 있다. 무슨 일만 생기면 동네북 신세가 되니. 그런데도 선망의 직업 리스트에서 빠지는 경우는 없다. 식을 줄 모르는 노량진 고시학원가의 열기가, 학교 공부 16년을 뒤로 하고 또 다른 공부에 매달리는 청년 물결이 자양분이다. 시험 만능주의의 폐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바늘 구멍을 통과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철밥통 딱지를 붙인다.
국민의 이런 시선에 공무원 선발·양성 기관은 어떤 입장일까. 김우호(58) 인사혁신처장은 “공직 사회도 변하고 있지만, 국민의 수준과 인식이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데 따른 지체 현상”이라며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일하는 것이 공무원의 숙명임을 감안하면 이해 가능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간극을 좁힐 방법으로 “채용 경로 다양화를 통한 유능하면서도 열정과 공익적 마인드를 갖춘 인재 선발”을 강조했다. 공무원 채용과 상벌, 교육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김 처장을 만나 소리 없이 변화 중인 공직 사회를 들여다봤다. 인터뷰는 그의 취임 100일(7월 4일)을 앞두고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했다.
-채용 경로 확대를 강조했다. 이미 민간경력, 개방형 임용 등 공무원 입직 경로가 다양하지 않나.
“그 통로를 더 확대해야 한다. 전문성과 무관하게 시험 과목을 공부해야 공무원이 될 수 있는 현재 구조가 완벽하다고 하기 어렵다. 농촌에 관심이 많고 농업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들이 농림축산식품부나 농촌진흥청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럴 수가 없다. 이걸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공무원 채용 시험은 높은 신뢰도로 정평이 나있는데.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한 시스템이고, 응시생 10명 중 9명이 시험의 공정성·투명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공정에 대한 다양한 담론 속에 능력이 전부냐는 문제 제기가 있고, 공개 채용 시험 특성상 시험만능주의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적시에 영입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공채 중심의 현 채용 시스템이 바뀌나.
“당분간 현행 기조는 유지하되, 민간경력ㆍ지역인재 채용, 개방형 직위 확대 등 경력 채용 경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각 부처에서 자체적으로 진행되는 경력 채용 절차를 개선해야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 시험 공고부터 원서 접수, 서류 제출 등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채용시험 온라인 통합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채용 역량을 높일 채용 전문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제기한 바 있다.
“기관장 임기는 길어야 3년이다. 장이 바뀌면 인사 담당자가 바뀌니, 전문성 있고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을 갖추기 힘들다. 시험만 잘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경험을 축적했고 열정적·공익적 마인드를 갖춘 인재 선발이라는 목표가 실현되기 어렵다. 채용 전문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기존 공무원의 역량 강화도 중요하다. 공무원들이 세종으로 내려간 뒤 교육이 예전 같지 않아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대면 중심의 정형화된 교육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직접 연구, 직장 내 연구모임 결성, 온라인 세미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자기 성장’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MZ세대 특성상 공무원 역량 강화 요구가 높다. 조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교육을 통한 공무원 역량 강화 전략이 있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서 공무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지능형 인재개발 플랫폼’으로 강력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새 플랫폼은 쉽게 말해 ‘공무원 교육의 넷플릭스’다. 현재 40만 건의 공무원 교육 콘텐츠가 있다. 그러나 무엇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가 한 번 본 영화를 기억했다가 연관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처럼, 이 플랫폼은 공무원의 연령, 직무, 관심사에 맞춰 콘텐츠를 추천한다. 자신과 업무가 비슷하거나 직급이 같은 공무원이 많이 들은 콘텐츠를 알려주는 식이다. 일부 부처에서 시범 운영 중이고, 내년 전 부처로 확대한다.”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의 자발적 변화다.
“공직 사회가 대국민 서비스와 정책의 질을 높이려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공직자윤리법, 국가공무원법 같은 사전ㆍ사후적 일벌백계 장치에 더해 적극행정 지원제도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관련 법령이 없더라도 공무원들이 국민 눈높이에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돕는 장치다.”
-국민 모두가 바라는 행정이지만, 그에 대한 공직사회 분위기는.
“적극행정 지원제도가 정착된 2019년 42건이던 제도 활용 행정 건수가 지난해 486건으로 늘었다. 공무원이 적극행정위원회에 ‘법령은 없지만 이걸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문의한 사례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안팎의 비난은 있지만 공무원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입직 당시 다짐을 간직하고 있고, 적극행정 제도는 그 초심을 유지하게 하는 장치다. 특별 승진과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공직 사회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공무원들의 노고가 많다.
“코로나19와 각종 재난 현장의 공무원들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이때 자긍심만 한 동력이 없고, 작은 격려와 칭찬만 한 영양분이 없다. 인사혁신처도 공무원 각자의 잠재력이 발현되고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