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기본이고, 간장은 활용이다. 소금의 원초적인 짠맛은 재료 본연의 맛을 이끌어내고 증폭시킨다. 간장의 역할은 다르다. 재료 본연의 맛과 어우러져 풍성한 맛까지 낸다. 재료와 소금이 만나면 정직한 ‘1+1=2’가 되지만, 재료와 간장이 만나면 신비로운 ‘1+1=3’이 된다.
간장은 짠맛만 아니라 감칠맛에 단맛, 신맛까지 낸다. 거기에 더해 풍부한 향까지 담겨 있다. 그 옛날 귀한 손님이 오면 ‘웰컴드링크’로 씨간장을 대접했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푸드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핑계 삼아 소금도 간장도 다양하게 모아 골라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 역시 가장 아끼는 것은 한식연구가 선생님의 귀한 씨간장이다. 한 방울 혀에 대기만 해도 맛과 향이 폭죽을 터트리는 이 간장은 애지중지 냉장고에 보관하며 회심의 요리를 할 때에나 근검하게 사용한다.
간장의 이 오묘함은 자연의 작은 생물들로부터다. 발효를 통해 포도를 와인으로, 쌀을 막걸리로 바꾸는 인류 미각의 오랜 반려, 미생물. 짠맛은 오로지 소금물에서 기인하고, 간장의 맛과 향은 모두 미생물이 발효시킨 콩에서 결정된다. 메주를 볏짚에 묶어 말린 것은 단지 건조를 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판에서 듬뿍 묻은 볏짚의 미생물을 메주에 접종한 일이었다. 고장마다 계절마다 다른 미생물이 우발적으로 조합되어 각기 다른 메주와 간장의 맛을 만들어낸다.
손님에게 씨간장을 내놓던 시절의 발효는 들판에서의 우연에 따라 맛도 달라졌다. 유독 간장이 맛있는 해라면 그 해의 들판에 좋은 미생물이 조합돼 있었다는 뜻이다. 이 행운을 인위적으로 지속시킨 것이 바로 씨간장이다. 좋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해에 묵은 해의 맛 좋은 간장을 겹쳐 넣었고, 이런 간장을 겹장이라고 했다. 한 해 동안 숙성되어 농도가 진하면서도 짠맛이 순화되고 단맛과 감칠맛이 잘 오른 전해의 간장과 새로운 해의 묽은 간장을 섞어 바로 사용하기 좋은 간장으로 만드는 의미도 있지만, 우수한 미생물 조합을 유지하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어느 과거의 맛 좋은 우연을 차곡차곡 쌓아둔 것이 지금 우리가 이따금 경험하는 씨간장의 정체다. 씨간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모두가 대를 이어온 역사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찬미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과거의 어느 들판으로부터 온 인상적인 맛이다.
씨간장은 과학의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도 존재한다. 가장 맛 좋은 조합의 미생물을 보존하며 간장을 제조할 때마다 배양시켜 좋은 맛을 동일하게 유지한다는 얘기다. 씨간장의 마음 그대로, 어느 들판에서인가의 행운을 우리가 영생시키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