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유통회사는 왜 '소설'에 꽂혔을까?

입력
2021.07.15 04:30
2면
엔씨소프트의 단편소설 프로젝트 '픽션 플레이' 
식품과 문학 결합한 현대백화점의 '식품문학관'
신세계는 전자책 대여 서비스 '신백서재' 개설


장강명, 배명훈, 김금희, 박상영, 김중혁, 김초엽, 편혜영. 여느 출판사의 한국 문학 신작 라인업이 아니다. 게임 전문 기업 엔씨소프트가 ‘즐거움의 미래’를 주제로 선보인 단편소설 프로젝트 ‘픽션 플레이(Fiction Play)’에 참여한 작가들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달 1일 배명훈 작가의 ‘수요 곡선의 수호자’를 시작으로 한 달간 자사 블로그를 통해 일곱 작가의 단편소설을 공개했다.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 오디오북, 전시회 등의 콘텐츠도 함께 선보였다. 15일에는 작품을 모은 ‘놀이터는 24시’라는 단행본도 출간됐다.


대중 문화의 첨단이라 할 수 있는 게임 회사가 한국 문학과 협업을 시도한 데는 최근 달라진 한국 문학 이미지가 한몫을 했다. 진지함에서 탈피하고 젊은 독자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근래의 한국 문학이 게임 회사와의 지향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소설가들과의 협업이 엔씨가 추구하는 ‘상상의 가치’나 ‘새로운 즐거움’을 전달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들 입장에서도 게임 회사와의 협업은 새로운 도전이다. 장강명 작가는 엔씨소프트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게임 회사가 왜?’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고 했다. 김금희 작가는 “문예지라든지, 일반적으로 소설이 유통되는 경로가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국내 작가들의 소설이 소개된다고 하니 너무 신나고 기대가 됐다”고 전했다.


게임 회사만 한국 문학의 확장성에 매료된 것은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초부터 식품 전문 온라인몰 ‘현대식품관 투홈’에 식품을 주제로 한 소설과 수필을 매달 한 편씩 연재 중이다. 정세랑, 김연수, 장우철, 오은, 요조, 김금희 등 유명 작가들이 투홈에서만 판매 중인 식품을 주제로 3~4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을 창작했다.

예를 들어, 김연수 작가의 짧은 소설 ‘아직은 봄이니까 미나리는 얼마든지’는 경북 청도군 특산물인 한재 미나리를 소재로 한다. 주인공이 대학 신입생 시절 미나리를 먹고 힘을 얻었던 과거를 회상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미나리 구매 링크와 소설에 등장한 미나리 물김치 레시피가 등장하는 식이다.

현대백화점 같은 유통회사가 문학 콘텐츠에 눈을 돌리는 것은 온라인몰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의 성향 변화와 관련이 있다. 기존에 온라인몰 방문 소비자들이 단순 상품 구매를 위한 ‘목적형 소비자’였다면, 최근에는 콘텐츠를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을 사는 ‘발견형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식품문학을 선보인 후 투홈 사이트의 1인당 고객 체류 시간이 30%가량 늘었고 이는 판매 증대로 이어졌다.

‘상품’만큼이나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은 최근 이커머스 업계의 공통 전략이다. 쿠팡의 경우 지난해 12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쿠팡 플레이를 론칭하고 다양한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해 온라인 서점 시장에도 진출해 약 2,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11월 교보문고와 제휴해 약 50만 종의 도서를 자사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신세계백화점 역시 4월부터 전자책 대여 서비스 ‘신백서재’를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앱에 로그인하면 누구나 무료로 3만여 권의 도서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이 플랫폼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포함시키는 전략을 세우면서 문학 콘텐츠도 자연스레 활용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한소범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