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8일까지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경기 수원시에서 16.5㎡(약 5평)짜리 원룸 21채로 임대사업을 하는 50대 A씨는 국토교통부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숨이 '턱' 막혔다. 내달부터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되고,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한다는데 A씨에겐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증보험에 가입하려면 주택담보대출금과 임대보증금의 합이 주택 가격을 넘어서면 안 된다. 하지만 A씨는 공동담보로 받은 대출로 인해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여러 차례 문의해봤지만 "가입이 불가하다.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해 보증금을 낮추거나 대출금을 갚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A씨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보증금의 10% 이하,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A씨는 "당정이 자꾸 엇박자를 내니 갈피를 잡기 어렵다"며 "전과자는 피하게 됐지만 과태료를 내거나 헐값에 건물을 팔아 대출을 갚아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세보증금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를 한 달여 앞두고 임대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현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내놓는 대책마다 부작용이 나온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국토부는 지난해 '7·10 대책'을 통해 등록임대사업자가 소유한 임대주택의 전세보증금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보증보험은 임대사업자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을 때 HUG 등이 대신 돌려주는 제도다. 세입자가 선택적으로 가입하고 보험료를 전액 납입하던 방식이 의무가입과 함께 보험료를 임대인과 임차인이 3대 1로 나눠 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신규 등록임대사업자는 지난해 8월 18일부터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고, 적용이 1년 유예된 기존 임대사업자는 다음 달 18일부터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임대사업자 규제 정책과 보증보험 의무화 제도가 엇박자를 내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국토부는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월세 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주택 가격을 넘거나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60%를 넘는 경우 등에 한해 보험가입을 불허하고 있는데, A씨처럼 상당수의 임대사업자가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처지다. 또한 임대사업자들이 보증금을 내리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의무가입제 도입에만 신경 썼을 뿐 실제 도입 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 부랴부랴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새로운 대책마저도 또 다른 부작용이 예상된다. 14일 국회 국토위를 통과한 민간임대주택특별법 개정안에 따르면, 임대사업자는 임대차 계약 체결 이후 30일 이내에 지자체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이달부터 시행된 전월제신고제 신고기한(30일)에 맞춰 기존 3개월에서 30일로 기한을 줄인 것이다.
그러자 임대차계약 신고 시 보증보험 가입 보증서를 제출해야 하는 점이 문제점으로 부상했다. 최근 보험 가입기관에 신규 가입 신청이 몰리면서 신청 2, 3개월 후에야 보증서 발급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30일 이내 계약 신고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보증보험 가입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가입 면제 대상이 △최우선 변제금 이하인 소액보증금 △임차인이 이미 보증보험에 가입했고 임대사업자가 보험료를 전액 지급한 경우 등으로 늘어났지만 오히려 부담은 가중됐다는 게 임대사업자들 입장이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가입이 어려운 사업자들이 많다"며 "보험료 부담도 75%에서 100%로 커지는 등 오히려 규제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교통위 전체회의에서 "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현실에 맞도록 일정 부분을 한시적으로 조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안 마련을 위해 고민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