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비극 이후 서울대생 커뮤니티엔 어떤 말 오갔나

입력
2021.07.17 13:00
서울대 재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살펴보니
상당수 연대와 추모 뜻 밝혀...일부는 불만 표출
"근무 태만 먼저 개선돼야...환경 개선은 나중"
민노총·비서공 등 외부 정치세력 개입 주장도
서울대생 비판 기사엔 "정의감을 가장한 열등감"


"서울대 일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다."
"죽음을 이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운동권의 노림수"
"서울대 보내준다고 하면 넙죽 절할 사람들인데"

서울대 관악생활관에서 근무하던 청소노동자 이모(59)씨가 지난달 26일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진 뒤 갑질 논란에 이어 학생처장 사임, 서울대 총장의 공식 사과 등 후폭퐁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또 다른 학내 구성원인 서울대생들은 이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살펴봤다.

이씨의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열악한 근무 환경과 과도한 노동 강도, 직장 내 갑질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휴식 중 사망한 사건은 2019년 8월 공대에서 60대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이후 2년 만이다.

상당수 게시글은 휴식 중 사망한 청소노동자 이씨를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킨 학교 측의 대응을 비판하면서, 청소노동자의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도 연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학생은 커뮤니티에 "관리자를 엄중 처벌하고 청소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유가족의 산재도 마땅히 승인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다른 학생은 "(기숙사에 사는) 사생들도 분리 수거를 잘 하지 않으면서 청소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고 민원을 넣는 건 매우 이기적"이라며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직접 연대 운동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대학에서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자꾸 일어나는 것은 분명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학생들도 공동체 일원인 만큼 단체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노동자분 사망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며 청소노동자 휴게실 마련을 위한 청와대 청원을 공유하는 학생도 있었다. 게시글에는 청원에 참여했다는 이용자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7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고인이 사망 전 서울대로부터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 힘든 노동 강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중간 안전관리팀장의 갑질이 사망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유족과 동료들은 평소 안전관리팀장이 업무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에게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와 한자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첫 개관 연도를 묻는 등 필기시험을 치러 불필요한 모욕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매주 수요일 회의에는 정장, 단정한 복장을 입도록 요구하거나 밥 먹는 시간을 감시하고 청소 검사를 새로 실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은 직장 갑질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게 역겹다"며 "언론에 마구잡이로 유통되고 소비되고 있는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썼다.

관악사 기획시설부관장을 맡고 있는 남성현 교수는 10일 서울대 기숙사 홈페이지에 "노조가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해 다른 위생원 선생님들과 유족을 부추겨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거나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등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서울대 전체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썼다.

이어 "해당 관리자를 마녀사냥 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이라며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의 자리에 충실했던 관리자를 억지로 가해자로 둔갑시킬 순 없는 노릇"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두 교수의 글은 여론을 폭발시켰다. 글을 쓴 당사자는 물론 서울대를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사망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도 이뤄지기 전인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유족 측은 교수들이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는 격한 표현을 쓰면서 "고인을 두 번이나 모욕"했다고 반발했다. 누리꾼들은 "진정한 사과부터 하라"고 목소리를 냈다.

특히 "서울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교수의 주장에 "노조 따위가 서울대에 덤빈다는 식의 선민의식이야말로 역겹다"고 비판했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13일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성명문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최근 학생처장 글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논란이 됐다"며 "개인의 의견이 대학본부의 입장으로 오해되는 등 혼란이 계속돼 학생처장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권센터의 공정한 조사와 업무 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갑질 의혹을 받는 기숙사 안전관리팀장은 인권센터 조사 기간 청소노동자 관리 업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업무를 하게 된다. 징계 여부는 인권센터 조사가 끝난 뒤 결정된다.


"근무 태만 고치는 게 먼저 ... 환경 개선은 나중"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알려진 이후 이 같은 논란이 벌어지는 과정을 두고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사건 이후 게시된 수십 개의 글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일부는 청소노동자의 권리 주장이 그들의 의무에 우선할 수 없다고 썼다. 또 노동자의 근무 태만이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는 권리만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학생은 커뮤니티에 "돌아가신 건 안타깝다"면서도 "서울대 노동자들 근무 태만이 심각하다"며 "사인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학생들이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썼다.

해당 글엔 "일처리 수준이 개선되기 전까지 처우 개선은 이뤄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준 높은 일처리가 강제되고 본인이 책임을 다할 때 근로자들의 복지 처우도 나아져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다른 학생은 "갑질은 없어져야 한다"면서도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을 위한 공간이며 노동자를 고용한 것도 쾌적한 면학 환경 조성을 위한 것"이라고 썼다.

그는 "노동에 알맞은 대가를 주는 것은 당연하나 노동 운동으로 면학 분위기까지 방해되니 학교의 존재 의의에 의문이 든다"며 "기숙사도 제대로 청소되어 있지 않은데 노동자가 권리만 내세우고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해당 글은 좋아요 42개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반박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학교의 존재 의의는 학생들 편의와 복지를 대변하는 것이 맞지만 이를 못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교의 잘못"이라며 "처우 개선을 위해 학생들도 목소리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근무 태만이 더 문제라는 주장은) 세상 물정 모르는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커뮤니티 이용자는 '학생은 피해자, 노동자는 가해자'가 아니라며 "19년도 이전까지 서울대의 노동 환경은 악덕기업 못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존권, 인생 걸고 공부하는 건 좋지만 그게 파업권보다 중요하면 법이 보호해줬을 것"이라며 "우리 공동체 안에서 상식적인 수준의 노동 환경이 갖춰지는 게 도시락 먹고 집에서 공부하는 불편함보다 크다"고 썼다.


"외부 정치세력이 학내 문제 개입하려는 것"

앞서 구민교 전 서울대 학생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부 정치세력이 우리 학내 문제에 개입하고 간섭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말았다"고 써 논란이 됐다.

커뮤니티에는 비슷한 의견이 올라왔다. 일부 학생들은 노조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공동행동'(비서공)이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학내 노동자의 죽음을 이용해 정치적 이권을 얻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 게시글은 "노동자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집단(노조)이 순수하게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집단인지 모르겠다"며 "약자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선이고, 이에 반박하는 사람은 그게 학생일지라도 갑이자 적폐로 몰아가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생은 "비정규직 처우개선의 해법이 정규직 전환인지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청소노동자분들이 고강도의 업무를 하고 있으며 처우개선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알고 있으나 청소노동자의 업무는 누구로든 대체 가능하고 임금이 높을 수가 없다"며 "이 상황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노동자가 일하지 않을 경우 진퇴양난의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커뮤니티 이용자는 "청소노동자를 추모하는 것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의 죽음을 이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운동권의 노림수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비극의 원인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돌리는 위장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썼다. 해당 글은 좋아요 146개를 받는 등 높은 추천 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이에 반박했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어떤 단체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며 "비서공이 제출한 카드뉴스, 입장문 등에선 '책임 있는 조치와 노동환경 개선', '사과와 진상규명', '갑질 자행한 팀장 및 관리자 징계',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협의체 구성' 등으로 정규직 전환 요구는 없었다"고 바로잡았다.

또 다른 학생은 고인의 죽음에 민노총 등 외부세력을 끌고 온다는 주장을 두고 "고인이 민주노총 일반노조 서울대 분회에 소속된 노조원이었기 때문에 민노총이 시위하고 대응하는 것은 상식적"이라고 반박했다.

또 "민노총 행보를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정치를 위해 무턱대고 상관없는 일에 끼어든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비판에 "서울대 보내준다면 넙죽 절할 사람들인데"

한편 청소노동자 사건에 공감하면서도 애꿎은 서울대 학생들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시글도 많았다.

한 학생은 서울대 학생들을 비판하는 댓글에 대해 "청소노동자에 대한 갑질 문제는 애도하고 응원해야 할 일이고 문제점도 개선돼야 한다"며 "그런데 그걸 왜 학생들에게 책임 전가하는지 모르겠다. 억울하다"고 썼다.

또 다른 학생은 "작은 시설 청소노동자에게 일어났다면 이렇게 커질 일이었겠나?"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서울대', '기득권', '적폐'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비난하기 딱 좋은 키워드"라고 말했다. 해당 글은 63개의 추천을 받았다.

이러한 게시글엔 "어차피 자식 서울대 보내준다고 하면 넙죽 절할 사람들", "사회가 서울대생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것. 서울대생은 왜 항상 죄인이고 겸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은 각각 수십 개의 높은 추천수를 받았다.

또 다른 이용자는 서울대생을 비판하는 댓글에 "정의감을 가장한 열등감"이라 평하기도 했다.


2년 전 난방파업 꺼내며 "또 난방 끊으려고?" 조롱도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고용 형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일부 학생들은 2년 전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난방 파업을 언급하기도 했다.

비서공은 커뮤니티에 올린 카드 뉴스에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지적했다. 카드 뉴스는 "중앙도서관 난방 파업에 빠진 질문, 노동자들은 '왜' 파업한 걸까?"라는 글에서 "파업의 근본적 원인은 서울대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2018년 초 30년 넘게 용역으로 간접 고용돼 오던 노동자들은 본부에 직접 고용됐으나 전환 과정에서 근속연수를 인정받지 못했고, 최저임금을 겨우 상회하던 임금마저 최저임금 수준으로 삭감됐다"고 지적했다.

2019년 2월 서울대 기계·전기 담당 노동자들은 7일부터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대학 도서관 등 일부 건물의 난방을 중단했다. 이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선 엇갈린 목소리가 나왔다.

난방이 노동자의 업무 중 하나였다면 파업으로 난방이 중단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과 함께 학생을 인질로 잡아 목적을 쟁취하려 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충돌했다.

이번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와 관련해 비서공이 노동자의 고용 문제를 지적하자 커뮤니티에는 이를 비판하는 글이 잇달아 게시됐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또 난방 끊으려고?", "학생들의 연대를 바라려면 예전에 학생들 인질로 잡던 걸 사과해야지" 등의 댓글을 남겼다. 해당 글들은 수십 개의 추천을 받았다.


홍승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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