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해학 '탐나라공화국' vs 마음까지 정갈한 '생각하는정원'

입력
2021.07.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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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반, 인공 반... 닮은 듯 판이한 2개의 제주 정원

제주 서부지역에 닮은 듯 다른 2개의 정원이 있다. 한림읍의 ‘탐나라공화국’과 한경면의 ‘생각하는정원’이다. 자연에 인간의 손길을 가미했다는 점만 빼면 두 정원은 분위기가 완전히 판이하다. 탐나라공화국이 즉흥적이라면, 생각하는정원은 치밀하다.

먼저 탐나라공화국,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남이섬을 ‘나미나라공화국’으로 꾸민 강우현(68) 대표가 8년간 땅을 파고 돌을 골라 개국(?)했다. 지난 4월 문을 열었지만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디를 어떻게 꾸밀지는 땅을 파고 돌을 들어내 봐야 결정된다. 즉흥성이 가미된 무한한 상상력이 탐나라공화국의 최대 매력이다.


공화국으로 들어서면 ‘면세(Duty Free)’ 대신 ‘의무(Duty)’가 부과된다. 반듯한 돌에 ‘모든 방문객은 심고 가꾸고 쌓고 닦고 만들고 나누고 함께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보세구역(기념품점)에서는 공사 과정에서 나온 현무암을 녹이고 화산송이(붉은 빛깔의 화산 부스러기)를 가미해 만든 예술품을 판매한다. 한쪽 벽면을 장식한 커다란 작품은 현무암 표면을 무한 확대하면 보이는 풍경이라 설명한다. 제주의 온갖 생명체가 담겨 있다.

입국 비자(당일 1만 원ㆍ3년 3만 원)에 도장을 찍으면 드디어 탐나라공화국으로 들어간다. 황금연못을 지나 좁은 길을 따라가면 노자처럼 살고 싶은 공간이라는 ‘노인정’이 나타난다. 하늘과 땅, 유와 무 등의 글씨를 보면 잠시 선계에 발을 들인 건가 싶은데, 노자서원은 노출 콘크리트 현대식 건물이다. 벽면에 빈틈없이 책이 빼곡한 책방이자 쉼터다. 미로 같은 길은 용굴못, 마그마캐니언, 천일합일문, 인어마을, 인당수, 천풍토성 등으로 이어진다.




종잡을 수 없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 공화국이 지향하는 바는 어렴풋이 감지된다. 홈페이지 첫 장을 장식한 문구처럼 ‘있는 데로 써먹고, 가진 대로 살아간다’는 정신이다. 여기에 자연과의 조화, 해학을 가미했다. 기부받은 2002년 월드컵 축구공 도자기는 호롱궁 벽면을 장식하고, 납품이 무산된 범종은 용굴산 구석에 설치됐다. 물길을 만들다 드러난 협곡은 그랜드캐니언의 축소판이 되고, 땅을 파다 발견된 용암숨골은 고기를 굽는 연회장으로 변신했다. 천인합일문 문턱에 앉으면 비스듬하게 쌓은 돌담이 뒤편 당오름의 능선과 연결된다.

하얀 소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언덕 위에 돌탑이 세워져 있다. 하단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는 거울을 설치해 맞은편 하늘이 담긴다. 소가 넘어가는 이 언덕에서 모두들 ‘속아 넘어간다.’ 인당수로 가는 ‘영천은하수길’은 지역과 업무를 협의한 산물이다. 헌책도서관은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고, 공개되지 않은 산자락에선 아직 굴삭기가 작업 중이다. 매시 정각 출발하는 스토리투어에 참가하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 약 12㎞ 떨어진 생각하는정원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치밀한 정원이다. 반세기 동안 가시덤불로 덮인 자갈밭을 개간하고 나무를 가꾼 성범영(82) 원장의 땀과 정성이 밴 공간이다. 1992년 분재예술원으로 개원해 2004년 생각하는정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나무를 만지는 일이 연애요, 노동이요, 생각이라는 성 원장은 자신의 책에서 '정원의 생명은 좁쌀만 한 새순을 틔우고 조그만 꽃봉오리를 벌리기 위해 몇 계절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운다’고 썼다. 부지런한 사람만 정원을 가꿀 수 있다는 말이지만, 최종적인 성패는 자연의 섭리가 결정한다. 나무가 가르쳐준 지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정갈하게 기른 분재가 그만큼 깔끔한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도 넘게 걸려 완성한 작품이다. 일부 나무는 직접 발아시켜 키웠다. 동양화에나 등장할 법한 소나무, 하얀 줄기가 멋들어지게 휘어진 주목, 돌을 껴안은 느릅나무 등 분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정원을 구성하는 돌탑과 돌담, 연못과 폭포도 군더더기 없이 반듯하고 가지런하다.




수형을 교정하는 과정이 ‘나무를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성 원장은 “건강한 사람이 아름답듯 건강한 나무가 아름답다”고 답한다. 괴롭히기만 한다면 나무가 살아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분재는 각각의 나무가 지닌 본래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예술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를테면 생각하는정원은 나무가 주는 지혜와 그로부터 깨달은 철학을 담은 정원이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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