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등장한 ‘고스트 키친(Ghost Kitchen)’은 매장 없는 음식점이다. 당연히 기존 음식점에서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 종업원이 없다. 대신 온라인 주문에 맞춰 공유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해 배달한다. 국내 음식 배달 서비스와 비슷하지만 매장 없이 운영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통적인 외식 문화가 확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샘 나자리안 미국 식품브랜드기업인 C3 회장은 이달 초 대형 쇼핑몰 투자업체인 브룩필드자산운용, 사이먼자산그룹 등과 함께 미국 전역에 고스트 키친 1,000여 곳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총 8,000만 달러(약 917억 원)가 투자된다.
나자리안 회장은 “9월 뉴욕 맨해튼을 시작으로 미국 대도시에 쇼핑몰 등 공간을 임대해 24시간 운영 가능한 공유 주방을 만들고, 7~10개의 음식 브랜드가 공동 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식 인구가 줄어든 대신, 고스트 키친에 대한 수요는 날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C3에선 이미 미국 전역에서 250여 개의 고스트 키친을 자체 운영 중이다. C3의 외식브랜드 ‘우아미 버거’ ‘크리스피 라이스’ 등 3, 4개의 브랜드가 하나의 주방을 공유하며, 음식을 조리해 제공한다. 줄(ZUUL), 도어대시(Doordash) 등 음식 배달 전문 온라인 플랫폼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차량공유서비스인 우버도 지난해 1억3,000만 달러(약 1,49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매입한 뒤, 고스트 키친에 공간을 임대해 주는 스타트업 ‘클라우드키친스’에 투자했다.
고스트 키친이 ‘인기’를 끄는 건 코로나19 사태로 음식 배달 서비스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독일 통계사이트 스타티스타는 미국 요식업계 전체에서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13%였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이전 예상치(9%)보다 4%포인트 더 많은 수치다. 2025년엔 21%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익에 직격탄을 맞은 기존 음식점들이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하지만 높은 임대료와 매장 유지비 등 배달 서비스만으론 수익을 내기가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 개인 소유 음식점 중 약 20~25%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반면 매장 운영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는 고스트 키친이야말로 수익 창출이 용이한 최적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음식점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을 하는’ 공간이고, 이런 기능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미레야 로자 뉴욕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고스트 키친이 코로나19로 늘어났지만, 기존 음식점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라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상호 교류를 하는 데에 음식점이나 카페만큼 적합한 공간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