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로 꾸며진 모란 꽃길을 따라 걸으면 창덕궁 낙선재에서 포집한 모란향이 물씬 나는 모란 정원이 나온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 왕실 유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란을 주제로 한 특별전 ‘안녕, 모란’이 열리고 있다.
정원을 둘러보다 보면 모란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부귀와 영화로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모란은 그림 소재로 자주 다뤄졌다. 조선후기 화가인 허련의 모란 그림이 대표적인데, 전시장에선 그가 먹으로 그린 모란 화첩(총 8점)을 감상할 수 있다. 허련은 모란을 유독 많이 그려 '허모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색 대비가 두드러진 모란 그림도 눈에 띤다. 신명연이 그린 산수화훼도(모란) 그림에서는 분홍빛 모란을, 남계우가 그린 모란ㆍ나비 그림에서는 밝은 분홍빛과 붉은빛의 모란을 감상할 수 있다.
모란이 등장하는 건 그림뿐만이 아니다. 청화백자, 보자기, 장신구 상자, 비녀, 머리띠 등 셀 수 없이 많은 유물에서 모란 무늬를 발견하게 된다.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유물 속 무늬가 모란이었음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그 중에서도 모란 무늬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혼례복이다.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가 입은 혼례복에서는 궁중자수의 정교한 기술을 고스란히 살필 수 있다.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활옷도 전시 중인데, 보존처리 중 겉감과 안감 사이에서 종이심이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해당 종이심은 1880년 헌종 비 효정왕후의 50세 생일을 기념해 열린 과거시험의 답안지로 확인됐다. 종이가 귀하던 시기 옷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란은 장례 때도 함께 했다. 철종의 국장을 기록한 의궤를 보면, 왕의 관을 산릉으로 모시는 행차 그림에서. 채여(왕실 의식때 귀중품을 실어 옮기던 기구)에 모란이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세자의 무덤을 조성한 것을 기록한 의궤를 통해서는 무덤을 만들 때 사용한 다양한 석물에 모란을 새긴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충배 국립고궁박물관 과장은 “유물 속에 잘 드러나 있는 모란을 이번에 종합적으로 다뤄본 것”이라며 “모란의 화려함 속 깃들어 있는 안녕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마음이 잘 전달됐음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부 가꾸고 즐기다, 2부 무늬로 피어나다 3부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번영을 빌다 등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