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군복을 입어야 했던 1차대전 흑인 미군

입력
2021.07.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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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헨리 존슨

미국 흑인들은 1차대전에도 참전했다. 분리·차별법(Jim Crow Laws) 시대의 그들에게 그 전쟁은 '반쪽 시민'이 아님을 인정받기 위한 무대이기도 했다. 1917년 미국이 참전을 선언한 직후 2만여 명의 흑인이 자원 입대했고, 그해 5월 징병제가 시작된 뒤로 약 70만 명이 참전했다. 그들의 보직은 육군 잡역 위주였고, 해병·항공대는 아예 받지도 않았다. 영내 차별은 2차대전 때보다 훨씬 가혹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헨리 존슨(Henry Johnson, 1892.7.15~1929.7.1)도 1917년 6월 입대해 지휘관만 백인인 흑인부대에 배속됐고, 여러 부대를 거쳐 그해 말 프랑스 전선에 투입됐다. 당시 유럽 파병군 지휘관은 존슨이 소속된 369대대를 프랑스 측에 '양도', 프랑스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도록 했다. 병영 내 백인들의 원성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369대대는 '할렘 헬파이터스(Harlem Hellfighters)'란 별명으로 불리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헨리 존슨은 그들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아르곤 전선에 투입된 그는 1918년 5월 14일 분대 야간 경비 도중 소대 규모의 독일군 기습에 응전, 실탄이 떨어진 뒤에는 칼과 맨몸으로 맞서며 독일군 4명을 죽이고 포로로 끌려가던 전우를 구출하는 공을 세웠다. 그 '혈투'로 그는 21군데나 상처를 입었고, '블랙 데스(Black Death)'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무용담은 미국 일간지에 소개되며 흑인들의 영웅이 됐고, 프랑스 정부는 무공십자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에게 어떤 훈장도, 부상 군인에게 수여하는 퍼플하트 훈장도 주지 않았다. 프랑스군 작전에 투입됐다는 게 공식 이유였지만, 진짜 이유는 피부색이었다.

그는 부상 후유증을 앓다가 만 36세로 별세했고, 미국 정부는 1996년에야 퍼플하트 훈장을, 2003년 수훈십자훈장을, 2015년 군 최고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사후 수여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