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까지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변호사가 임기 종료 직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정거래 분야 담당 변호사로 직행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3년 동안 주요 기업 심의·의결(심결) 절차에 모두 참여하는 중책을 맡다가, 해당 기업을 변호할 수 있는 자리로 곧바로 이동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조인 출신의 공정위 비상임위원은 퇴직 후 재취업심사 대상도 아니고 사건 수임 제한도 없어 '법 공백' 상태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A변호사는 올해 3월 공정위 비상임위원 임기 3년을 마치고 4월부터 김앤장에서 공정거래 및 기업형사 분야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A변호사는 검사 출신으로 첨단범죄 분야 수사경력이 있고, 지방검찰청 차장검사 등을 지냈다. 검사 생활을 하는 동안 공정위 법률자문관으로 파견 근무한 적도 있다.
A변호사의 대형 로펌행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공정위 내 비상임위원의 막중한 역할 때문이다. 비상임위원은 공정거래위원장과 부위원장, 상임위원들과 함께 전원회의에서 기업들의 불공정행위 여부를 판단한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건은 소회의에서 결정하는데, 이 회의에도 비상임위원이 참여한다.
외부전문가인 비상임위원이 공무원 신분인 상임위원과 다를 바 없이 기업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소회의의 경우 상임위원이 회의를 주재하는 게 원칙이지만 비상임위원이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정도다. 공정거래 분야 사건을 많이 수임해온 한 변호사는 "공정위 조사 대상 기업 입장에선 상임위원이나 비상임위원이나 똑같이 '판사'이자 '저승사자'로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A변호사가 공정위 비상임위원으로 기업을 심결하다가, 해당 기업을 변호하고 자문할 수 있는 자리로 곧바로 간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A변호사가 공정위 근무 때 심결에 참여했던 기업이 소송 대리인으로 김앤장을 선택할 경우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정위 비상임위원을 그만둔 뒤 공정위 근무 시절 심결했던 기업의 경영진 사건을 수임해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A변호사는 이해충돌 우려가 제기된다는 지적에 대해 “소속된 로펌에서 비상임위원 시절 심결했던 사건 소송을 맡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공정위 근무 시절 연관된 사건에 대해선 회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A변호사 설명에도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법조인 출신 공정위 비상임위원의 퇴직 후 행보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전혀 없어 '개인의 양심'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상임위원들은 상임위원들과 달리 퇴직 후 재취업 심사 대상이 아니라 이해충돌 가능성을 따져볼 수도 없다. 또한 공정거래법에선 비상임위원이 속한 로펌에서 맡는 사건의 경우 심결을 회피하는 규정은 있지만, 퇴직 후에는 사건 수임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법조계에선 수십 년 동안 공정위 공무원으로 일했던 상임위원과 외부 전문가로 3년 정도 활동한 비상임위원을 동일하게 규제하긴 어렵지만, 최소한의 취업 기준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비상임위원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전직 정부 관계자는 "비상임위원을 그만둔 법조인이 로펌에 취업하거나 사건을 수임할 때 이해충돌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기준이 없으면 공정위와 법조계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