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노조 대립에 이재명·교수들 가세… '청소노동자 사망' 파장 확산

입력
2021.07.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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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숨진 이씨, 직장 내 갑질 시달려" 주장에 
학교·일부 보직교수 "노조가 사건 왜곡" 맞서 
이재명, 학교 전격 방문해 사건 공동조사 요청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 이모씨의 '직장 내 갑질' 피해 의혹을 둘러싸고 노조와 학교 측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고인과 동료들이 새로 부임한 상사로부터 부당 대우를 받았다는 노조 주장에 대해 학교 측이 사실관계 왜곡이라고 맞서고 노조가 이를 재반박하는 형국이다. 특히 일부 보직교수들이 노조와 이에 동조하는 외부인사를 강도 높게 비난하자, 그 타깃이 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서울대를 전격 방문하면서 논란이 학교 밖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노조-학교 입장차 팽팽

1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의 사망 원인과 향후 대책을 둘러싼 노조와 서울대 간 협의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앞서 노조와 유족은 이씨의 죽음을 과도한 노동과 직장 갑질에 따른 산재로 규정하고 학교에 △산재 공동조사단 구성 △청소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협의체 구성 △학교 차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교내 인권센터에 이씨의 인권 침해 여부 조사를 의뢰한 만큼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논란이 된 '건물 영어 이름 시험'과 관련해 학교는 '직무교육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기숙사) 관계자는 이날 한국일보에 "시험은 소원수리까지 포함한 가벼운 퀴즈 형식이었고, 근로기준법상 권리 교육도 함께 실시됐다"면서 "고인 또한 (취업한 지) 1년 반 만에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했었다"고 말했다. 앞서 갑질 당사자로 지목된 안전관리팀장 A씨는 지난달 초 부임한 이후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예고 없이 시험을 치르면서 '관악학생생활관'의 영어명이나 준공연도 등 업무와 무관한 문제를 낸 걸로 드러났다.

노조는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정성훈 민주노총 서울대노조 시설분회장은 "애초 (A 팀장의) 시험 갑질과 각종 복장 규정에 가장 크게 불만을 가졌던 사람이 고인"이라며 "고인의 남편도 증언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학교 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일부 교수들 "노조가 사건 악용"

일부 서울대 교수들은 온라인을 통해 노조 등을 공개 비판하면서 논쟁에 불을 붙였다. 학생처장인 구민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9일 페이스북에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게 역겹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논란이 되자 구 교수는 다시 페이스북에 "유족이나 다른 청소 노동자분들이 아닌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이재명 지사의 입장을 보도한 기사를 링크했다. 이 지사는 8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씨를 애도하면서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10일엔 기획시설부관장인 남성현 교수가 관악학생생활관 홈페이지에 "민주노총 측에서 이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하고 있다"며 "몇몇 다른 위생원 선생님들과 유족을 부추겨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거나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등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8일엔 행정대학원 소속 B 교수가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를 독려하거나 직원으로서 품위를 지키게 한 것이 갑질이라면 도대체 사용자 행위 중 갑질이 아닌 행위가 뭐가 있을까"라며 A 팀장에 대한 두둔성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B 교수는 A 팀장의 석사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학교 측을 비난하는 학내 여론도 적지 않다.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와 대학원 총학생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신체적·심리적 압박이 가득한 근무환경에 내몰리는 학내 노동자들을 학교가 나몰라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2년 전에도 청소노동자 학내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며 "반복된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학내 노동자 근무 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학생회 등은 전날부터 학교 측에 진상 규명과 대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곳곳에는 '갑질 논란'에 대한 학교 측 대응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게시됐다. 자신을 기숙사생이라고 밝힌 대자보 작성자는 "이 죽음은 말도 안 되는 갑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그 책임은 서울대 본부와 기숙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 중심 된 이재명, 전격 학교 방문

이 지사는 이날 오후 이씨가 일했던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건물을 방문해 유족과 노조 측을 면담하고 대학본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주·김남국 의원도 동행했다. 이 지사는 이씨 남편과 대화하면서 "여동생이 청소노동자였는데 7년 전 화장실에서 숨졌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이 지사 대선 캠프 관계자가 전했다.

이 지사는 취재진에게 "유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며 "(갑질 의혹에 대해) 학교 측에서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며 또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자신을 비난한 구민교 처장에 대해선 "그분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 지사와 의원들은 대학본부 측에 유족들이 요구하는 공동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주 의원에 따르면, 이 지사는 여정성 교육부총장에게 "양측 진술이 달라 학교 자체 조사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당사자들이 논란 없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동 조사를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했다. 여 부총장은 "당장 결론을 내릴 수 없으나 고려해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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