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문세윤·박나래를 낳은 21년 '마법의 손' [인터뷰]

입력
2021.07.12 18:11
23면
전은경 분장감독
'개그콘서트' '코미디 빅리그' 코미디 분장 '터줏대감'

문세윤의 '타노스', 박나래 '검정 고무신 기영이', 최성민의 '스펀지밥 뚱이'. 9월에 방송 10년을 맞는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온라인을 발칵 뒤집어 놓은 대표적 분장들이다.

김준호, 안영미부터 양세찬까지. 현재 무대에서 활동 중인 모든 개그맨의 코미디 분장은 이 사람의 손을 거쳐 갔다. TV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를 2011년 9월부터 꼬박 10년 동안 무대 뒤에서 지킨 전은경(51) 분장감독이다.



누구의 특수 분장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나래 기영이 분장요. 머리 도안 그려 나래한테 보여주고, 그걸 토대로 볼드캡을 만든 뒤 실리콘으로 피부에 붙인 뒤 썪은 이 그리고... 고생 많이했죠. 나래가 분장 욕심이 많거든요." 지난 9일 만난 전 감독의 말이다.


경력단절 딛고... "코미디 분장 편견 깨고파"

전 감독은 KBS 아트비전 출신이다. 올해로 분장 경력 21년, 초년병 시절엔 뉴스, 드라마 등 메이크업이 필요한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감복을 입고 이동할 때 계란이 곳곳에서 터지던 서초동 법원 현장부터 이동 거리가 많아 몸이 고된 대하사극 촬영지까지 분장통을 들고 뛰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지만, 그의 직업전선에도 위기가 닥쳤다. KBS '개그콘서트' 분장으로 이력을 쌓아가고 있을 때 전 감독은 육아를 위해 결국 일을 그만뒀다. 경력단절로 사회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때쯤, '코미디 빅리그' 분장 의뢰가 우연히 들어왔다. 그에겐 하늘이 준 기회였다. 전 감독은 "TV를 보면서 코미디 분장이 너무 부실해 안타깝더라"며 "분장일을 하면 우선 영화쪽에 몰리는데, 코미디 분장은 허접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 이 쪽에 더 욕심을 냈다"고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나무껍질도 재료

전 감독의 작업실엔 김숙이 요청해 최근 만들었다는 히피풍의 가발이 놓여 있었다. 그가 만들어 소장하고 있는 가발은 1,000여개. 그는 생활 곳곳에서 분장 아이디어를 찾는다. 집에서 키우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 마블 영화 '가디언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나무 전사' 그루트(김준호) 분장을 한 적도 있다. '개그콘서트'와 '코미디 빅리그' 등 공개 코미디 방송 분장 일을 오래하다보니 '빨리빨리'가 직업병이 됐다. 그는 "밖에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세월아 네월아하면서 분장할 수 없잖냐"며 "한 프로에 여러 코너 출연하는 개그맨도 있고, 100여명의 분장을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며 웃었다.


"'낄낄상회' 스님, 머리민 거 아녜요"

전 감독의 회사 이름은 '들풀'이다. 분장은 협업이 중요한 만큼, 들풀처럼 다 같이 모여 힘을 내자는 바람에서 지었다. 그는 막 순을 낸 '들풀'을 키우고 있다.

"코미디 프로에선 막내들의 분장을 먼저 챙겨요. 선배 눈치보느라 쭈뼛대거든요. 유튜브 '낄낄상회'에서 스님으로 나온 (임)종혁이 민머리 분장도 그래서 해줬죠. 개그 프로 사라져 유튜브로 간 개그맨들도 잘 돼야죠. 아, 종혁이 머리 민 거 아닙니다, 하하하".


양승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