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틱 스위밍 전설 유나미 “올림피언 자체가 자부심”

입력
2021.07.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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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메달에게도 박수를 / 즐겨라, 코리아]
방콕AG 은메달…올림픽 첫 결선으로 큰 획
은퇴 후 14년 만 광주마스터즈서 '5·18' 울림
“메달만 국위선양 아냐…출전만으로도 훌륭”

“메달을 따야지만 국위선양은 아니에요.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올림픽 나가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유나미(43)는 아티스틱 스위밍 불모지 한국에서 한 획을 그은 선수로 꼽힌다. 장윤경과 함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한국 아티스틱 스위밍 역사상 처음으로 자력 진출했고, 또한 처음으로 결선 진출까지 성공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도 연속 진출을 이루며 더 이상 한국이 불모지가 아님을 입증했다.

이후 아티스틱 스위밍을 떠났던 유나미는 14년 만인 2019년 세계 수영 동호인 대회인 광주마스터즈를 통해 돌아왔다. 그가 펼친 수중연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아티스틱 스위밍과는 달랐다. 그는 광주에서 정태춘의 '5·18'에 맞춰 영혼의 춤사위를 보여줬다. 점수와 메달이 달린 대회라기보단 광주를 위로하는 의식 같았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만난 유나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를 물었다. 세계 10위로 결선에 진출한 시드니올림픽을 꼽을 법했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광주 대회가 가장 의미 있는 대회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은퇴 후 결혼한 뒤로는 운동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 운동하느라 하지 못했던 일을 찾아다녔다. 평소 관심 있던 연기도 시작했다. 극단 ‘골목길’에 들어가 '백무동에서' '돌아온 엄사장'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그랬던 유나미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5·18'이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사실 제가 출전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신랑이 '5·18'이라는 곡을 들려줬는데 딱 꽂힌 거예요.”



아티스틱 스위밍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부담을 다른이에게 지게 하긴 싫었다. 결국 14년 만에 다시 몸을 만들었다.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을 찾은 느낌이었다. 잘해내고 싶었고 잘해내야만 하는 공연이었다. 다른 한 곡은 과거부터 마음에 담아뒀던 '심청전'을 택했다. 물을 매개로 한 한국적 정서가 아티스틱 스위밍과 맞닿아 있다. 과거 선수 시절엔 이기기 위한 곡을 선택했다면, 이번에는 모두 자신을 위한 곡이었다. 유나미는 “흔히 아티스틱 스위밍이라고 하면 활짝 웃는 모습과 딱 떨어지는 동작만 떠올린다. 하지만 슬픈 감정이나 애절함, ‘한’도 있다. 한국 음악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한국에서 아티스틱 스위밍이 이렇게 뜨거운 박수를 받은 적이 있던가. 대회가 끝나고 ‘무슨 음악이냐’고 묻는 다른 나라 코치들도 많았다. “메달 이런 건 전혀 생각 안 하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했어요.”

이럴 거면 은퇴를 너무 일찍 한 것 아닌가. 올림픽 메달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게 후회되진 않는지 물었다. 유나미는 “통장 잔고만 아니면 별로 후회는 없다”며 웃었다. “사실 저희 목표는 메달권 진입은 아니었어요. 본선 진출만은 꼭 하자, 이거였죠. (나머지는) 뒤에 (후배들이) 조금씩 조금씩 채워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금메달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스포츠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마찬가지예요. 성적 위주의 삶을 살다 보니, 메달처럼 바로 앞에 있는 그것을 이뤄야 하는 거죠.” 유나미는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오히려 아티스틱 스위밍, 그리고 스포츠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했다. 올림픽은 대결의 장을 넘어선 축제다.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너무 내 것만 보지 말고 시야도 넓혀가면서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런 경험은 사실 돈 주고도 못하는 거니까요. 물론 메달도 중요하지만 올림피언이라는 자부심 같은 건 확실히 있어요. 그런 자부심으로 더 힘 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1988년 어린 유나미에게 아티스틱 스위밍을 알려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대한수영연맹에 문의했다고 한다. 학원도, 학교도 없었다. 선수촌에도 독립 공간이 없어서 경영, 수구와 함께 운동했다. 20년 이상 지났지만 한국의 아티스틱 스위밍은 여전히 열악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후배들이 유나미는 예쁘기만 하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 6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예선대회에서 탈락하며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너희들이 가는 길은 또 누군가가 밟아야 될 길이기 때문에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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