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사가 '왕실 유물' 대가 없이 내놓은 이유

입력
2021.07.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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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씨, 조선 왕실 태실 유물 등 200여 점 기증
한학 공부했던 할아버지 대부터 물려받아

일제강점기 상당수 허물어지고 도굴돼 행방이 묘연했던 조선 왕실 태실의 유물이 최근 부산시립박물관에 들어왔다. 조선 세종의 열 번째 아들인 의창군의 태지석과 태를 안치하는 데 쓰이는 안태용 분청사기다. 태실은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 등 왕손이 태어나면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을 정해 태(胎), 즉 탯줄 등을 묻었던 곳. 송의정 부산박물관 관장은 "이 유물들은 도기 및 분청사기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던 15세기 조선 전기 장태문화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 귀한 조선 왕실의 유물은 한 시민의 기증으로 확인됐다. 기부자는 부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이상민(51)씨.

9일 본보와 전화로 만난 이씨는 "군인이었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물로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 박물관에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태실 유물 외 삼국시대 토기 한 점 등 22점의 유물을 최근 박물관에 기부했다.

이씨는 아버지로부터 300여 점의 유물을 물려받았다. 할아버지가 한학을 공부하는 등 집안 어른들이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아 유물을 오래 모았다고 한다.

이씨가 여태 공공기관에 기부한 유물은 200점을 훌쩍 넘는다. 범어사엔 불화를 보냈고, 이번에 앞서 2년 전에도 부산박물관에 소장 유물을 기증했다. 이씨는 "소장 유물 중 국보급 가치를 지닌 것도 있었다. 문화재급 귀한 유물이면 보관이 중요한데 개인이 온도와 습도를 맞춰가며 작품을 손실 없이 보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를 온전히 관람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증을 해왔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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