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얼마나 설레고 기분이 좋은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 말에 공감할 거예요.”
지난달 인천국제공항 전망대에서 만난 최모씨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취재차 우연히 들른 전망대에서 최씨를 비롯한 중년 여성 네 명은 활주로를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멀리 계류장을 오가는 항공기 사진을 찍다 활주로를 이륙할 땐 양손으로 귀를 막고, 소음이 사라지면 다시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전망대는 제4활주로가 비교적 가까워 항공기 이착륙 장면을 육안으로 비교적 자세히 조망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 십여 대가 활주로 앞에서 대기하며 줄지어 이륙하던 과거와 비할 바 아니지만,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항공기를 보고 있자니 답답했던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구경'을 실컷 하고 전망대를 나서며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던 몇 년 전만 해도, 비행기를 보러 일부러 공항 전망대를 찾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혹 찾았더라도 이렇게 들뜨고 설렐 수 있었을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평범했던 일상을 180도 바꿔 놓았습니다. 특히 공항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죠. 각국의 봉쇄조치가 이어지면서 여행객으로 북적이던 터미널엔 적막만이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공기 운항 편수도 급감했습니다. 세계 5위 규모인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2019년 한 해에만 총 40만4,104대, 하루 평균 1,100대에 달하는 항공기가 뜨고 내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55~60대가 전부입니다.
다행히 최근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신규 확진자 수도 안정세를 보이면서 공항도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6월 기준 인천국제공항의 운항 편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41.3% 증가했고, 출발 이용객 역시 10만7,337명으로 60.3% 늘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0명대를 넘기며 4차 대유행이 현실화하는 분위기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항은 또 한차례의 적막을 피할 수 없겠죠.
항공기의 이착륙 장면을 보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인근 하늘정원을 찾은 것은 지난 2일. 항공기의 궤적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항공기'의 궤적이 아니라 항공기 '항행등(Navigation Lights)'의 궤적이 맞는 표현입니다. 항공법에 따르면 야간에 비행하거나 비행장에 정류 또는 정박할 경우,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불(항행등)로 항공기의 위치를 나타내야 합니다.
항행등은 붉은색 좌현등과 초록색 우현등, 흰색의 미등으로 이뤄집니다. 자동차가 좌우 방향 지시등과 전조‧후미등을 통해 다른 차량에 빛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항공기는 항행등으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냅니다.
항공기의 항행등이 어두운 밤하늘에 남긴 흔적을 찍기 위해선, 먼저 항공기의 이착륙 방향을 충분히 반복해서 지켜봐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설정한 카메라의 방향이 곧 사진의 구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날은 카메라 3대를 현장에 세팅했습니다. 그러고는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인터벌 촬영(일정 간격으로 반복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이틀간 찍은 사진은 총 5,000여 장, 이중 희미하게나마 항공기의 궤적이 찍힌 건 500여 장 정도였습니다. 한 컷의 작품을 위해선 특별한 ‘후작업’이 필요했습니다. 항행등 밝기가 워낙 약하다 보니, 미리 선별한 176장의 사진을 일일이 한 장씩 레이어 합성하는 방식이죠.
힘겹게 완성한 궤적 이미지를 바라보며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설렌다"는 최씨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신나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간절한 희망도요. 하지만 지금의 확산세라면 소원 풀이는 또다시 미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좁고 긴 코로나19의 터널을 하루빨리 빠져나와 둥근 하늘에 수많은 '희망 궤적'이 그려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