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써가던 덴마크가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덴마크는 8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전에서 1-1로 맞은 연장전 해리 케인에게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며 1-2로 패했다.
이로써 우승을 차지했던 1992년 이후 29년 만에 결승 진출을 노렸던 덴마크의 도전은 멈추게 됐다. 덴마크는 이번 대회 ‘언더독'에 가까웠다. 프랑스, 이탈리아, 잉글랜드,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등으로 거론되는 우승후보 축에는 당연히 끼지 못했다. 조별리그 통과가 우선인 정도의 팀으로 평가 받았으나 기대 이상의 성과로 유럽을 놀라게 했다.
특히 팀의 구심점이던 크리스티안 에릭센(인터 밀란)의 이탈과 조별리그 초반 부진을 감안하면 반전 드라마나 다름없다. 에릭센은 지난달 1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핀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 도중 심정지로 의식을 잃었다. 다행히 심폐소생술을 통해 위기를 넘겼지만 덴마크로선 전력 손실과 함께 큰 충격에 빠지면서 객관적 전력에서 한 수 아래인 핀란드에 0-1로 일격을 당했다.
2차전에서도 우승후보 벨기에에 1-2로 져 2연패 탈락 위기에 몰렸다. 토너먼트 진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기적 같은 반전은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부터였다. 잠잠했던 덴마크는 이날 4골을 몰아치며 4-1 대승을 거뒀고, 1승2패의 성적에도 핀란드, 러시아를 골득실에서 따돌리고 16강에 진출했다. 흐름을 탄 덴마크는 16강에서 웨일스(4-0), 8강에서 체코(2-1)를 차례로 꺾으며 토너먼트의 강자로 부상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정상 생활로 복귀한 에릭센을 보고 더욱 힘을 냈다. 휼만트 덴마크 감독은 준결승 진출을 확정하고 “나와 선수들 모두 에릭센을 가슴에 안고 뛰고 있다”며 "에릭센이 살아남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항상 그를 생각하고,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준결승전에서 패했으나 덴마크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팀워크를 보여주며 끈끈한 축구를 펼쳤다.
덴마크 동화에는 에릭센 스토리 말고도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그만큼 훌륭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덴마크의 상승세 원동력으로 3-4-3 포메이션의 변화가 꼽힌다. 센터백 숫자를 늘려 수비를 두텁게 함과 동시에 좌우 윙백과 공격수 3명이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속공을 펼친 덴마크는 공수 밸런스가 잡히는 효과를 보였다.
여기에 신성 미켈 담스고르(삼프도리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었다. 에릭센이 빠져 공격 작업에 창의성이 부족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따랐는데, 담스고르가 날카로운 킥과 드리블 센스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카스퍼 돌베리(아약스), 마틴 브레이스웨이트(바르셀로나)까지 살아난 덴마크는 윙백들과의 시너지효과가 나면서 활화산같은 공격으로 이번 대회 12득점을 몰아쳤다.
덴마크 관중들은 연장 전반 14분 케인에게 역전골을 내주자 머리를 감싸며 아쉬워했으나 경기 후에 뜨거운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했다. 덴마크 주장 시몬 키예르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놀라운 여정이었다. 결승에 가지 못해 실망스럽지만 기대 이상이었고,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