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내에서 정화시설을 갖춘 150여 년 전의 공중화장실 터가 발견됐다. 조선 시대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시설이 발굴된 건 처음 있는 일인데다, 당시로선 선진적 정화시설을 갖춘 것으로 평가돼 눈길을 끈다.
8일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을 발굴조사한 결과, 1868년(고종 5년) 동궁 권역 중건 시 만들어져 20여 년간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대형 화장실 하부 시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양숙자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발굴을 통해 경복궁에서 화장실이 실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경복궁 발굴조사가 대부분 중심 권역을 중심으로 이뤄져, 화장실이 있었던 주변의 발굴조사가 이제 초기 단계인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화장실은 길이가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로 돼 있고,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 2개가 있다. 발굴조사에 참여한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의 오동선 연구사는 “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내부에 쌓인 분뇨를 발효시키고, 정화된 오수가 배출되는 구조"라며 “하루에 약 150명의 분뇨를 처리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설명했다. 총 4~5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실은, 한 칸에 두 명씩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동시에 8~10명이 이용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구조는 쌓인 분뇨에 물을 넣어 발효와 침전의 과정을 거쳐, 정화된 오수를 외부로 배출하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 익산 왕궁리, 양주 회암사지에서도 대형 화장실 터가 나온 적은 있지만, 분뇨를 저장했다 일정 시간 후 오수만 배출하거나, 사람이 직접 안에 들어가서 분뇨를 치우는 방식이어서 이번에 발굴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당시 이 자리가 화장실 터였다는 것은 옛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1904년경의 경복궁 전각 칸수와 용도를 설명한 책인 궁궐지에 따르면 이곳에 화장실 4칸이 있다고 나온다. 이후 해당 시설들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박람회장인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된 것으로 파악된다. 토양 분석 결과 화장실 내부에서는 다량의 기생충 알이 나오기도 했다. 회충, 편충, 흡충류 등이다.
150여 년 전 이처럼 물을 끌어들여 정화수를 배출하는 시설을 갖춘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장훈 광운대 수질환경연구실장(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은 “물을 유입시켜 미생물이 분뇨를 분해하게 하는 정화 시스템을 갖추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외국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단 '세계 최초'라는 평가를 하기에는 다소 어색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동양과 서양은 전통적으로 분뇨를 정화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공용화장실을 누가 사용한 시설이었을까. 주로 세자를 보위하는 궁녀와 하급 관리, 숙직하며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경복궁 배치도에 따르면 화장실 주위에는 당시 세자의 식사를 준비하던 공간, 문기수(깃발을 들던 군인)의 업무 공간 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당시 경복궁 내에는 어떤 식물이 자랐는지를 추정해볼 수 있는 단서도 일부 나왔다. 토양 분석 결과 오이, 가지, 들깨 등의 씨앗을 비롯해 소나무, 참나무, 콩, 쑥 24종의 꽃가루가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