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전쟁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해군사관학교 3기)이 8일 오전 1시 2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강원 평강에서 태어난 최 대령은 1947년 9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50년 2월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갑판사관(소위)으로 임관했다.
1950년 6ㆍ25 전쟁 발발 이튿날 무장병력 600여명을 태우고 동해상에서 부산으로 침투하던 1,000톤급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대한해협해전에 참가했다. 이 전투는 해군 첫 승전으로 기록됐다. 이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인천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 2차 인천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에도 참전했다. 무공훈장 3회를 포함해 6개의 훈장을 받았다.
또 해군 첫 구축함인 충무함(DD-91) 함장이던 1965년에는 일본 어선으로 위장한 북한 간첩선을 적발하는 공을 세웠다. 최 대령은 생전 서해를 수호하다 목숨을 바친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참전용사의 위국헌신 정신을 선양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왔다.
최 대령의 부친은 강원 평강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병규 선생이다. 최 대령 집안은 군인 가족이기도 하다. 두 동생은 각각 해병대 대령과 해군 중사로 전역했다. 최 대령의 장남은 해군 대위, 차남은 육군 중위, 셋째는 공군 대위, 넷째는 육군 소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유족은 최재신 전 고려개발 사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최재민 소아병원장, 최재완 광주대 토목공학과 교수 등이 있다. 차남인 최 전 원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다리를 쓰지 못하는 동료를 2년간 업어서 출퇴근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최 전 원장은 전날 정치 참여를 선언하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최 대령의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특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9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