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스타일? 여행 습관도 나이를 먹는다

입력
2021.07.10 10:00
<167> 나와 세상을 위한 책임 여행

소싯적 방랑벽 있는 유명 연예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배낭여행 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이를 먹으면서’라는 단서를 붙여 “잠자리는 편하게, 반드시 좋은 숙소를 택하게 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20년 전인 당시엔 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돈이 많아서 하는 이야기라 여겼다. 본의 아니게 40대를 넘기면서, 여행 스타일 역시 미묘하게 달라지는 걸 알았다. 공부도, 여행도 때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에 맞는 스타일은 있다.

헝그리 정신, 필요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이걸 먹을까, 말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다. ‘헝그리 정신’은 여행자의 사명과도 같다. 특히 여행이 장기전이라면 단 1달러를 아낀 것에 깊은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헝그리 정신을 품되, 매몰되진 않는다.

여러 여행자의 후기를 귀로, 눈으로 접하면 자꾸 여행 경비를 비교하게 된다. 요상한 질투가 생기고 나는 왜 더 아끼지 못했나 하며 책망하기도 한다. 사기라도 당하면 나쁜 감정은 증폭된다. 여행을 갉아 먹는 좀벌레다. 머릿속에서 일주일 내내 망할 사기꾼의 얼굴이 떠나지 않는다. 그래 봤자 나만 괴로울 뿐 해결책은 아니다. 그래서 버렸다. ‘딱 여기까지’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가위로 싹둑 자르는 습관을 들였다. 물론 처음엔 잘 안 된다. 하다 보니 내성이 생겼다.

과도한 베낭의 무게... 약 값이 더 들겠어

처음 중남미를 여행할 때 배낭 무게가 40kg에 육박한 적이 있다. 배낭이 곧 집이었다. 등에 메는 배낭이 20~25kg에 달하고, 앞으로 메는 보조 배낭이 10~15kg을 오갔다. 참 젊었다.

짐 싸기는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해야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늘 부족한 게 생기고, 배낭에서 애물단지가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현지에서 방법이 생긴다. 때로는 맥가이버처럼 샘솟는 아이디어에 스스로 놀란다. 그래도 배낭은 여전히 고집하는 기본 아이템이다. 여행할 길이 트렁크를 끌고 가기에는 험준한 까닭이다. 자갈과 모래 암벽 등을 헤쳐가기에 트렁크 바퀴는 약해 빠졌고, 유기체가 되어야 할 짐을 수용하기에 사각형은 너무 정직하다. 버스 짐꾼의 손에 부서질 위험도 상존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몸을 생각한다. 체력에 부담이 될 과한 무게의 배낭은 스스로 거부한다. 자칫 병원비가 더 들 수도 있다. 여행 전에 짐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더 고심하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물건 위주로 짐을 꾸린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만 해도 훌륭한 여행이거늘. 그걸 참 늦게 깨달았다.


누군가 날 속일 거라는 생각... 마음은 열어 두자

해외에 가면 일단 경계심이 늘어나게 된다. 정상이다. 적당한 경계는 여행자를 노리는 ‘나쁜 놈들’을 퇴치하는 좋은 예방책이다.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일까.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 머리끝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면 점점 사람을 못 믿게 된다.

쿠바에서 몇 번 사기를 당한 후에는 쿠바인 전부가 나쁘다고 매도한 적이 있다. 누가 다가오면 등부터 돌렸다. 여행하면 할수록 배웠다. 세상은 넓고 좋은 사람도 많다. 인간에겐 누군가가 나를 돌봐주길 바라는 욕망과, 더불어 누군가를 돌보고 싶다는 욕구도 존재한다. 사람에게 속지만, 그 분노를 치유하는 것 역시 사람이다. 인연의 기회를 저버리기보다 행여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을 열고 믿는 걸 택했다. 물론, 호구가 되겠다고 선언한 건 아니다.


“옛날이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것... 나도 변했잖아

개인적으로 한 번 방문한 곳을 다시 가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좀 더 새롭고 색다른 생경함을 바라는 까닭이다. 인생이 의지대로만 되지 않듯 여행지를 재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다. 다시 가보면 첫 추억의 그 느낌이 없거나 아닌 경우가 많다. 강산도 변하는데 여행지도 당연히 바뀌어 있다.

‘여긴 이랬고, 저긴 저랬는데….’ 옛날이 좋았다고 떠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꼰대’ 같아 그만하기로 했다. 여행지뿐만 아니라 여행자인 나 역시 변했다. 게다가 과거는 미화되는 특성이 있지 않던가. 대신 자숙 모드로 들어간다. ‘오버 투어리즘(한 지역이 수용 가능한 여행자 수를 넘겨 불편해지거나 관광지를 훼손하는 현상)’을 생각한다. 나만 누리고 싶다는 욕심으로 현지인에게, 혹은 미래의 여행자에게 해를 끼친 건 아닌지 반성한다. 지속 가능한 여행엔 책임이 필요하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