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화장실 불법촬영 도중 적발돼 수사 대상이 된 상근예비역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찰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군 수사당국이 조사를 한번도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피의자가 숨지면서 범행 피해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군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시민 신고를 받고 시내 여성 전용 공중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하던 남성 A씨를 체포했다. A씨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신원조회를 통해 A씨가 집에서 출퇴근하며 육군 부대에 복무하는 상근예비역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을 군 경찰에 이첩했다. A씨에게 임의제출받은 휴대폰도 군에 넘겼다.
하지만 경찰 조사를 받고 귀가한 A씨는 소속 부대에 출근하지 않은 채 실종됐다.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며칠간 수색한 결과 A씨는 지난달 말 서울 동호대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A씨가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끼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수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이 피의자 사망을 이유로 사건을 종결할 경우 추가 범행이나 촬영물 유포 여부를 명확히 가릴 수 없다고 우려한다. 일각에선 피의자가 군인이라도 이번 사건처럼 근무시간 외에 부대 밖에서 저지른 범죄까지 군에 이첩하는 현행 제도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사건이 민간에서 군으로 이첩되는 과정에서 수사의 적극성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며 "특히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처럼 피의자가 사망하면 군에서 범죄 사실과 추가 피해 여부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변사 사건 수사로 사건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군 당국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A씨 휴대폰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는지를 묻는 한국일보 질문에 "조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