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문화사로 보면 서양은 사과(apple), 동양은 복숭아(桃)다.
인류의 원죄(original sin)는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사과로부터 시작됐다. 사과는 성서에 나타난 최초의 음식물로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성경의 선악과(善惡果)를 17세기 영국 시인 존 밀턴이 '실낙원'에서 사과로 해석했다.
북유럽 신화에서 사과는 신들의 나라에서만 열리는 과일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이에 영감을 받은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서 청춘의 여신 프라이아가 신들에게 매일 제공한 과일이 사과였다. 이와 관련된 영화가 '반지의 제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파리스의 심판'의 도구, 영웅 헤라클레스가 받은 12과제 중 하나가 황금사과였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깨닫게 한 것, 명궁 빌헬름 텔의 아들 머리 위 과녁, 백설 공주가 마녀로부터 받은 과일도 사과였다.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는 프랑스 화가 폴 세잔과 에밀 졸라와의 사과와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동성애가 알려지자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혁신의 아이콘 기업인 애플사(社) 로고는 그 자체가 사과다. 처음 뉴턴의 사과, 무지개색 사과에서 지금의 한 입 먹은 회색 사과까지 일관됐다. 영국의 록 그룹 비틀스가 설립한 레코드사도 애플(Apple Corps.)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기독교 문화와 달리 한자(漢字)문화권에서는 복숭아가 대신한다.
우선 낙원은 황금궁전이 아닌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은 곳도 복숭아밭(桃園結義)이었다.
손오공이 불사신이 된 것도, 동방삭이 삼천갑자를 살 수 있었던 것도 서왕모의 반도원(蟠桃園)에서 불사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이다. 장수를 기원하는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는 궁중 장식화였다.
복숭아는 벽사의 의미도 있어 가지로는 귀신을 쫓았다. 놀부 마누라가 조상신을 못 오게 제사상에 복숭아를 놓는 장면은 불효의 극치를 보여준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복숭아나무는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 없는 약재이다.
복숭아는 또 모양과 색깔 때문에 성적 메타포(metaphor)로 상징된다.
대표적인 것이 도화살(桃花煞)이다. 도화는 4월부터 피는 복숭아꽃이다. 색정(色情)도 도색(桃色)으로 표현한다. 달밤에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된다는 속설도 있다. 애증(愛憎)을 나타내는 대표적 고사 여도지죄(餘桃之罪)에도 복숭아가 등장한다.
'사주는 같아도 해석은 변한다'는 말이 있다. 예전의 도화살은 음란하고 화류계를 지칭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기와 매력을 의미한다. 도화살이 있는 사람은 일단 성격이 명랑하고 타인에게 친절하다.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직장이나 대인관계에서 도화살은 필수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한 대표적 사례다.
런던 정경대 캐서린 하킴 교수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자본에 매력을 추가했다. 그녀는 "매력은 잘생긴 외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유머 감각과 활력, 세련미, 상대를 편하게 하는 기술 등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멋진 태도나 기술"이라고 말했다. ('매력 자본')
사주(四柱)에서 12지(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중 자·오·묘·유(子·午·卯·酉)가 도화살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권력도 도화도 다 한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