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령관 "미군, 통보도 없이 야밤에 철수했다"

입력
2021.07.06 21:30
신임 사령관 "상황 종료 2시간 뒤 알아"

미군이 지난 2일 2001년 이후 20년간 주둔했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를 떠나면서 아프간 군에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기지를 책임지게 된 아프간 신임 사령관조차 상황 종료 2시간 뒤에야 이들의 철군 사실을 알게 됐다.

바그람 공군기지 신임 사령관인 미르 아사둘라 코히스타니 장군은 6일(현지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야밤에 바그람 기지에서 철수했고, 이를 2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됐다”며 “아침 7시가 돼서야 완전히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측의 설명과 차이가 난다. 지난주 미군 대변인 소니 레게트 대령은 철수를 아프간 지도자들과 조율했다고 밝혔다. 폭스뉴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 역시 지난 2일 복수의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바그람 기지에서 완전히 떠났다고 보도했다. 또 철수 과정에서는 아무런 공식 행사가 없었다고 매체들은 덧붙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아프간 군인들은 미군의 ‘비밀 철수’ 소식을 뒤늦게 듣고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군인 나에마툴라는 “그들은 외곽을 순찰하던 아프간 병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떠남으로써 20년 호의를 하룻밤에 잃었다”고 토로했다.

미군은 떠났어도 그들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다. 코히스타니 장군은 미군이 물병 수만 개와 음료수, 전투식량 등을 포함해 물품 350만 개를 남겼다고 전했다. 전화기, 문 손잡이, 막사의 창문 등과 작은 물품들이 많았고, 큰 물품에는 민수(民需) 차량 수천 대와 장갑차 수백 대, 소형무기들이 포함됐다. 다만 이들은 바그람 공군기지에 있던 중화기는 가져갔다.

미군의 철수 낌새는 약탈꾼들이 먼저 알았다. 군인들이 기지를 떠나면서 전기를 끊자 이를 눈치 챈 약탈꾼들이 정부군보다 먼저 들어와 막사를 뒤졌다는 게 통신의 설명이다. 군인 압둘 라우프는 “우리는 처음에 그들(약탈꾼)이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5㎞ 지점에 위치한 바그람 기지는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간에서 탈레반 및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싸우는데 중추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한때 미군 10만 명이 이곳에 주둔했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들이 재임 중 바그람 기지를 방문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도 점령 거점지로 사용되는 등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 공격 세력의 기반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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