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지사의 '바지 발언'의 파장이 상당합니다. 과거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난 사안을 '도덕성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한 번 더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답변 또한 부적절했다는 점에서 당 안팎에서 쌍방의 저급함을 지적하는 말들이 오갑니다. (▶관련기사)
'바지 발언'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2차 TV토론회가 열렸던 5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지사에게 배우 스캔들을 해명하라는 거였는데요. 이 지사가 웃으며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라고 응수하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죠.
일부에서는 이 지사의 바지 발언이 13년 전인 2008년 1월 25일 가수 나훈아씨가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모인 기자 회견에서 한 말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 지사가 나씨를 패러디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당시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렸던 나씨의 기자회견은 배우 김모씨와의 스캔들을 해명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나씨가 일본 야쿠자와 갈등을 빚다가 신체 주요 부위가 제거됐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는 1년 넘게 잠적했다가 해명을 위해 나타난 것입니다.
나씨는 기자회견 도중 "소문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단상 위로 올라가 바지 지퍼를 살짝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이 모습은 생중계되기도 했는데요. 그는 실제로 바지를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지사의 '한 번 더 내려야겠냐'는 워딩을 볼 때, 그는 '나훈아 패러디'보다는 2018년 10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의 신체 검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배우 스캔들의 내용은 2007년 기혼자였던 그가 비혼인 척 속이고 김부선 배우를 만났다는 겁니다. 의혹은 2010년부터 제기되다가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상대편 바른미래당 김영환 후보가 공개 언급하면서 대대적으로 불거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김 배우까지 이 지사와 교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해 선거판의 이른바 '핫이슈'로 떠오릅니다.
이 지사가 의혹을 부인하자 바른미래당이 이 지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고발했고, 이 지사 측이 거꾸로 김 후보와 김 배우를 같은 혐의로 맞고발하는 송사로도 번집니다.
김 배우 또한 강용석 변호사를 통해 이 지사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하죠.
그해 10월 4일 배우 스캔들은 이른바 '점의 전쟁'으로 국면이 바뀝니다. 김 배우와 공지영 작가 사이의 통화 내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출된 게 계기가 됐습니다. 공 작가와의 대화에서 김 배우는 "이 지사의 신체 특정 부위에 '동그랗고 큰 까만 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이 지사는 초강수로 맞섭니다. 허위사실공표건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의 요청 이전에 스스로 신체 검증을 받겠다고 나선 겁니다.
이 지사는 신체 검증 당일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혈관이 뭉쳐서 생긴 빨간 점밖에 없다"고 해명하며 "엉뚱한 소리가 계속 나와서 경찰이 신체 검증을 안 한다면 합리적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방식으로 확인하려고 한다"고 예고하기도 했죠.
이 지사는 2018년 10월 16일 오후 4시 5분부터 12분까지 약 7분 동안 아주대병원 웰빙센터 1진찰실에서 피부과와 성형외과 전문의 각 1명씩 2명의 의사로부터 신체 검증을 받습니다.
의료진은 그날 "(김 배우와 공 작가의) 녹취록에서 언급된 부위에 점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동그란 점이나 레이저 흔적, 수술 봉합, 절제 흔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용 경기도 대변인은 신체 검증 후 "이 지사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모멸감과 치욕을 감수하고 힘들게 신체 검증을 결정했다"며 "검증 결과 김 배우의 주장이 허위로 증명된 만큼 소모적 논란이 중단되고 이 지사가 경기도정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발표했습니다.
김 배우는 그러나 약 2주 뒤 자신의 SNS에 "점 빼느라 수고했다"며 신체 검증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검찰이 배우 스캔들 관련 허위사실공표죄 사건에서 이 지사를 불기소 처분하며 그해 정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이후 김 전 후보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의 적법성을 다시 검토해 달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지만, 법원은 이듬해 검찰 처분이 타당하다며 기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마침표를 찍은 듯 보였던 이 지사의 배우 스캔들은 지금 제20대 대선 국면에서 부활합니다.
지분이 있는 정 전 총리는 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체 검증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저도 자세히 모르는데 국민들도 잘 모르시잖나. (이 지사가 대선 예비후보 '국민면접') 면접관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어야 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관련기사)
신체 검증 당시 정 전 총리는 국회의장 임기 2년을 마친 국회의원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 지사의 신체 검증에 대해 모른다고 밝힌 거죠.
정 전 총리는 라디오에서 "(이 지사가) 제가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의 태도를 보여 의외였다"며 당혹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점의 전쟁'을 낳았던 배우 스캔들이 3년 만에 대선을 등에 업고 돌아와 다른 이슈들을 삼키는 '바지'로 비화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