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시절 남편 고(故) 김종석씨의 간첩활동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여성이 49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아들의 간첩활동에 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던 김씨의 부모도 사망 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 호성호)는 간첩 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혐의로 1972년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 받은 A(76·여)씨에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국가보안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당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A씨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71년 10월 21일 경기 자택에서 북한 공작원을 비밀리에 만나 남편 김씨에게 전달할 공작금 20만원과 지령문건이 담긴 봉투를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또 이듬해 3월 21일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고 귀가한 김씨에게서 공작금 11만원을 받고, 같은 달 22일부터 김씨 지시에 따라 북한 공작원과의 접선을 돕는 등 간첩활동을 방조한 혐의도 받았다.
김씨의 부모는 1972년 12월 13일 전남 친척 집에서 아들이 공작금이라는 점을 알리면서 준 현금 2만3,200원을 수수하고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주는 등 간첩활동에 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1972년 당시 징역 4년을, 그의 시부모는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김씨는 1968년 5월 소연평도 서남쪽 바다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가 같은 해 12월 남한으로 귀환했다.
이후 경찰에 체포된 김씨는 북한에서 노동당에 입당해 충성을 맹세했고 공작원으로 투입됐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는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공작금 31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으로 감형 받았고, 이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수십 년간 ‘간첩의 굴레’를 쓰고 살았던 김씨는 2015년 7월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항소심 법원인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이듬해 3월 재심 청구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2019년 4월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며 기각 결정을 파기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2019년 9월 재심을 개시했다.
재심 재판부는 “공소사실 대다수는 불법 구금이나 가혹 행위 때문에 유효성이 인정되지 않아 증거 능력이 없고, 피고인이 받은 돈이 간첩 행위와 관련해 쓰였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지 49년 만에 나온 무죄 판결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재심 개시 결정 2개월 뒤인 2019년 11월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선고 결과를 지켜볼 수 없었다.
A씨는 남편과 별도로 2015년 인천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항고한 끝에 2019년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A씨는 재심을 통해 "남편과 함께 배를 탔다는 사람으로부터 당시 20만원과 편지 1통을 건네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 사람이 북한 공작원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 A씨가 북한 공작원임을 알고서 돈을 받았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금품을 수수한 행위가 국가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A씨의 남편이 수사기관 등에 의해 허위 자백한 것이라는 취지로 일관되게 주장한 점, 피고인이 영장 없이 위법하게 체포돼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점 등 종합해보면 A씨 남편의 일부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신빙성이 없는 이상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