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끝나도 일본은 욱일기 들 것...지치지 않은 관심 필요해요"

입력
2021.07.10 14:00
日 욱일기 문제 알려온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2019년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에 청원 올려
"욱일기는 하켄크로이츠" 7만4,000명 넘어
"최근 유튜브 소개되며 해외 참여자 크게 늘어"

"일본의 욱일기 사용은 도쿄올림픽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 문제점을 계속 알리고 공감을 얻기 위해선 한 명이라도 힘을 보태주셔야 합니다."

2020 도쿄올림픽을 보름 앞둔 상황에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의 청년리더를 맡고 있는 활동가 김현종씨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그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사실상 무관중으로 치러질 도쿄올림픽뿐만 아니라 이후 스포츠 행사에서도 일본은 욱일기를 들어 보일 가능성이 있으니 문제 제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2019년 9월 올림픽에서 욱일기 응원과 욱일기 유니폼 제작 등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한체육회가 직전인 8월 22일 도쿄올림픽 조직위 관계자에게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라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온 발표다.

반크는 이에 항의하고 그 문제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20 도쿄올림픽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라"는 내용의 청원을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 올렸다. 체인지닷오알지는 가입자 수가 4억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다.

김씨는 "(반크는) 이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욱일기 사용을 경고하라는 서한을 보냈다"며 "IOC는 올림픽에서 어떠한 정치적 시위도 없어야 한다면서도 '건별로 대응'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는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게 진행한 국제 청원에는 많은 세계인들이 호응하고 있다. 최근 서명자 수는 7만4,000명을 넘었고, 조회 수는 34만 회, 공유 수는 4만4,700회를 기록했다. 욱일기 반대 청원은 체인지닷오알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청원 중 하나가 됐다.

김씨는 "서명자 목록을 확인하면 외국인들이 많다"며 "세계 평화를 표방하는 올림픽에서 전범기 사용을 허용하는 데 문제를 느낀 외국인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베를린올림픽과 도쿄올림픽 담은 포스터 제작

김씨는 이번 청원을 통해 해외에서도 욱일기의 의미를 알게 된 것도 동참의 이유라고 해석했다.

그는 "(일본은) 해외에서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그 영향으로 서구에서는 욱일기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며 "청원 게시글의 설명과 이를 상징한 포스터가 외국 사람들에게 욱일기가 무엇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그 맥락을 알려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청원 게시글에는 욱일기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반크는 "일본 제국주의는 수많은 전쟁범죄와 살인, 고문, 강간 등 인권유린을 일삼았다"며 "이로 인해 사망한 아시아인은 약 2,000만 명으로 욱일기는 제국주의의 상징이고 한국 등 아시아인에게는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다"고 썼다.

욱일기가 일본에선 일장기와 다름없는 전통 깃발이라 하더라도 전쟁 피해 국가에는 제국주의 시절의 전쟁범죄를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게시글은 또 독일 나치당이 주도했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과 도쿄올림픽을 비교했다. 반크는 "독일 나치당의 히틀러는 아리아 종족의 육체적 우월성을 과시하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베를린올림픽을 이용했다"면서 "일본 정부도 도쿄올림픽을 군국주의의 선전 장소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반크는 청원의 이유로 올림픽 헌장을 들었다. 올림픽 제50조 2항은 "올림픽 장소, 경기장, 기타 지역에는 어떠한 종류의 시위나 정치·종교적 또는 인종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는데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는 올림픽 정신을 어겼다는 것이다.

광고 제작자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와 손잡고 만든 포스터는 욱일기와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를 쌍둥이처럼 묘사했다.

지난해 말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청원의 서명자 수는 6만 명을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상승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최근 올림픽이 결국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서명 인원은 다시 늘었다.

김씨는 "해외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청원을 많이 공유해 주신다"며 "청원이라는 플랫폼 덕에 욱일기의 역사적 맥락이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의 참여도 이끈 것 같다"고 말했다.

체인지닷오알지는 서명자 목록과 함께 청원에 적힌 서한을 IOC에 전달한다. 1차 목표로 삼았던 청원인 7만5,000명에 이르고 그 이상 계속 늘어나면 그만큼 욱일기 사용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반크에 따르면, 청원에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름과 이메일을 등록하고 원할 경우 일정 금액을 후원할 수 있다. 후원금은 체인지닷오알지의 운영비와 해당 청원의 홍보비로 쓰인다. 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은 청원은 체인지닷오알지의 메인 화면에 오르거나 키워드를 검색할 때 구글 페이지 상단에 오른다.

김씨는 "IOC에 직접 서한을 보내면 개별 단체의 의견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청원 사이트의 서명자 명단을 함께 보내면 그만큼 동참하는 여론이 많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IOC를 압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통해 홍보하자 중장년층도 관심도 커져"

반크의 욱일기 반대 청원이 알려지는데 또 하나 큰 역할을 한 것이 유튜브다. 지난달 27일 박기태 반크 소장은 유튜브 채널 '씨쿠니'와의 인터뷰에서 욱일기 반대 청원을 알렸다.

반크는 1월 구독자 약 21만 명의 씨쿠니 채널(대표 최수훈)과 업무 협조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씨쿠니는 국내외 문화와 외국인의 시각에서 문화를 바라보는 내용을 소개하는 정보 채널로 누적 조회 수가 5,000만 회에 이른다. 반크 활동 홍보 콘텐츠는 조회 수가 97만 회를 넘기도 했다.

김현종씨는 "유튜브를 통해 많은 분들이 욱일기 반대 청원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기태 반크 대표의 인터뷰가 씨쿠니 채널에서 소개된 뒤 국내 여러 커뮤니티에선 욱일기 반대 청원이 화제를 모았다. 누리꾼들은 "화내고 답답해할 것이 아니라 세계에 우리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21세기 독립운동이다" 등 반응을 보이며 청원 내용과 방법을 공유했다.

그동안 반크는 주로 청소년·청년층을 대상으로 활동했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장년층에게는 덜 알려졌던 게 사실. 그런데 유튜브를 통해 반크와 반크의 욱일기 반대 청원을 비롯한 활동들이 소개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김씨는 "유튜브를 비롯해 그동안 활용하지 못했던 플랫폼으로 세계인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의 행태를 내버려두거나 침묵해선 안돼"

김현종씨는 "1차 목표인 청원인 7만5,000명을 달성한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욱일기 사용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할 일을 반크가 대신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는 맞지 않다"며 "오히려 민간 단체이기 때문에 정부에게는 껄끄러운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참여까지 이어지긴 쉽지 않다"며 "변화를 위해선 시민들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반크는 5일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제국주의 부활의 선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새롭게 배포했다.

포스터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영토침략(독도)', '인종차별(욱일기)', '역사 왜곡(손기정)'이라는 시상대에 올라 있다.

이는 ①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서 독도를 일본 땅으로 왜곡하고 ②올림픽 경기장 내에서 욱일기를 들고 응원할 수 있게 허용하며 ③올림픽 박물관에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를 일본인으로 둔갑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반크는 '축하! 도쿄올림픽 신규종목 3관왕 스가'라는 제목의 해당 포스터를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된 포스터에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청원 주소(www.maywespeak.com/tokyo)도 추가됐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일본 정부의 행태를 내버려두거나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모든 한국인과 재외 동포가 적극 나서 세계인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홍승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