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이어 '대륙의 우버' 디디추싱까지… 中, IT 기업 전방위 옥죄기

입력
2021.07.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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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위반 혐의로 앱스토어서 퇴출
美 증시 상장으로 당국 심기 건드린 탓?
커지는 '공산당 리스크'에 주가도 출렁

‘대륙의 우버’로 불리는 중국 최대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滴滴出行)이 정부 제재로 존폐 갈림길에 섰다. 국가 안보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탓이다. 최근 중국의 핵심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줄줄이 당국의 타깃이 되면서 공산당이 이끄는 이 나라의 예측 불가능한 규제 위협인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가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디디추싱, 中앱스토어에서 '퇴출' 명령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사이버 감독기구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자국 내 모든 앱스토어에 디디추싱 애플리케이션(앱) 제거 명령을 내렸다. ‘심각한 개인정보 수집 및 사용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는 이유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 설명은 없었다. 불과 이틀 전, 중국 규제 당국이 국가 안보 위반 혐의로 조사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시작한 ‘디디추싱 때리기’가 이어진 것이다. 이 회사는 최소 45일간 신규 이용자 모집도 금지됐다.

디디추싱은 15개국의 도시 4,000곳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운영 중인 중국의 대표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전 세계 5억 명, 중국에서만 3억7,700만 명이 이용한다. 나흘 전인 지난달 30일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 44억 달러(약 5조 원)의 자금도 조달했다. 중국 기업의 미 증시 기업공개(IPO)론 알리바바그룹홀딩스(2014년·250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화려한 미국 무대 데뷔의 순간, 자국 정부가 발목을 잡은 셈이다.



美 증시 상장, 당국 심기 건드렸나

이번 조치는 중국의 ‘IT 공룡 길들이기’ 행보 중 하나다. 지난해 말부터 당국은 반(反)독점, 금융 안정 등을 이유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에 대해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다만 이번엔 결이 좀 다르다. 반독점은 거액의 벌금 부과 등 행정적 제재로 그치지만, 디디추싱에 적용된 국가 안보 위협은 혐의 입증 시 경영진이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는다. 최악의 경우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회사 측이 당장 “주무 부처가 위험 요인을 조사해 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납작 엎드린 이유다.

지배적인 해석은 ‘디디추싱이 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결과’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기술패권 전쟁에서 ‘테크 굴기(崛起)’를 떠받치는 IT 대기업들이 자국 통제권에 있는 홍콩이나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 알리바바, 징둥, 바이두 등은 홍콩 추가 상장을 통해 점차 미국에서 발을 빼고 있다. 이 와중에 디디추싱은 뉴욕행을 선택, 방대한 경영 자료를 미 증권감독당국에 제출했다. 결국 이번 조치는 ‘배신 행위 처벌’인 동시에, 향후 미국 증시 상장을 노리는 또 다른 기업들에 보내는 ‘사전 경고 메시지’라는 얘기다.


CAC가 이날 미 나스닥 상장사인 중국 유명 온라인 구인구직 플랫폼 보스즈핀, 화물차 공유 스타트업 만방집단이 운용하는 앱 3개의 국가 안보 위험 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글로벌 정책컨설팅회사 유라시아그룹의 샤오멍 루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베이징이 (디디추싱의) 해외 상장을 불편해한다는 걸 보여준 신호”라고 설명했다.

’차이나 리스크’에 주가도 급락

중국의 자국 IT 기업 옥죄기는 세계 자산시장에도 악재다. 공산당 입김에 불확실성이 커지면 주가도 맥을 못 출 수밖에 없다. 실제 관련 소식에 글로벌 증시는 잇따라 타격을 입었다. 2일 뉴욕 시장에서 디디추싱 주가는 전날 대비 5.94% 급락했다. 홍콩 증시에서도 이 회사 지분을 보유한 텐센트홀딩스 주가가 4.2%나 떨어지며 올해 상승분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앱 삭제 명령’ 공개 이후 첫 거래일인 5일엔 더 큰 폭의 하락이 불가피하다.

작년 12월 알리바바 반독점 조사 소식이 나왔을 당시에도 회사 주가는 뉴욕·홍콩 증시에서 각각 13%, 8%씩 곤두박질쳤다. 블룸버그는 “중국 승차공유 거인이 사이버 안보 시험대에 오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도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슈 캔터먼 블룸버그인텔레전스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자국 빅테크 기업 규제는 (기업) 가치에 계속해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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