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기독교 정신과 맞닿아…공평과 정의 실현 돕죠"

입력
2021.07.10 13:49
어느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 있었고 점심부터 일한 사람이 있었죠. 마감 직전인 저녁에 와서 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모두에게 품삯을 똑같이 나눠줍니다.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주인이 이야기합니다. ‘당신과 계약할 때 내가 한 데나리온(로마 은화)만큼만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라고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사람마다 생계에 필요한 액수, 최저생계비를 채워주신 셈입니다.
정미현 연세대 신학대학원 교수

정치권이 기본소득 논의로 뜨겁다.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해 보편적 소득을 보장하는 ‘복지제도의 이상’이라는 주장과 재원 마련이 불가능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는 비판이 엇갈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논의가 설익은 채 급부상했다는 우려도 있다.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연구해온 정미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한 개념이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경에 기본소득의 근거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마태복음 속 포도원 일화가 대표적 사례다. 정 교수는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업적이 중요하지 않았다”라면서 “성별과 인종 등 다양한 차이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기본소득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적과 보상을 분리하는 것, 출발점이 달라도 동일한 임금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은혜’라고 정 교수는 주장한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일정한 금액의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갑질을 당하면서도 생계를 위해서 억지로 일해야 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면서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율성을 확대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성서 곳곳에서 기본소득의 근거를 찾아냈다. 전도서에는 ‘각 사람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 갈라디아서에는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밖에 많은 구절이 보편적 복지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성평등에도 도움이 된다. 정 교수는 "오늘날 간호와 청소 인력 등 필수 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이들이 받는 임금이나 대우는 턱없이 낮다. 가정 주부의 경우 남편에게 경제권이 있으므로 여성은 금전적으로 자율적 주체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자기 통장에 자기 명의로 돈이 들어온다. 그 결과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여력이 생기고, 남는 시간을 자기를 위해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공동체에게도 좋은 방향으로 환원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기본소득을 선별 또는 보편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주신 토지, 공기, 빛 등 ‘공동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기본소득은 빅데이터처럼 모두가 생성한 몫을 모두가 나눠가지는 체계”라면서 “기본소득 논의는 한국사회의 산업구조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도록 기사의 기존 제목('기본소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입니다')을 현재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규리 인턴기자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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