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때문에...'냉·난방' 최첨단 서울 버스정류소 8개월째 공사만...

입력
2021.07.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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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10곳.... 217개 노선 이용객 불편 8개월째
작년말 '개시' 약속 못지키고 5월, 6월 약속도 깨져
좁은 임시 승강장... 버스기사 "사람 칠까 두려워"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착공한 미래형 시내 버스정거장 '스마트쉘터' 공사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당초 서울시는 작년 12월 ‘첫 번째 승차장을 선보이겠다’고 했지만 불발했고, 지난 5월에 이어 6월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멀리 있는 버스 정류소를 이용하거나 공사 현장에서 위태롭게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5일 서울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시내 10곳에서 스마트쉘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쉘터’는 공기청정기와 냉·난방 설비는 물론 핸드폰 무선충전, 와이파이 등 첨단 ICT기술로 무장한 정거장이다. 서울 시내버스는 물론 경기도버스 등 총 217개 노선의 버스가 정차한다. 다수가 이용하는 곳을 골라 펼친 사업이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시민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셈이다.

처음 약속한 ‘2개월 완공’은 고사하고, 8개월이 다 되도록 완공되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원성은 고조되고 있다. 숭례문 근처 직장에 다니는 한모(48)씨는 “회사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무용지물이다 보니 한 정거장 앞 또는 뒤로 가서 타거나 내려야 한다”며 “더 문제인 것은 언제 완공된다는 말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숭례문 정류장 공사 현장에는 공사 안내문이 있지만, 완공 시점 표시는 없다. 가려진 스티커를 떼면 ‘6월 중 완공’ 이라는 문구가 있고, 다시 한번 더 스티커를 제거하면 ‘5월 중 완공’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서울시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양화대교 때문에 앞·뒤 정거장을 이용하기 힘든 합정역 스마트쉘트 공사장에선 위험천만한 승차와 하차가 이어지고 있다. 합정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박모(44)씨는 “공사 중인 정류소 때문에 버스중앙차로에 조성된 좁디 좁은 임시 승강장에서 승객들은 버스가 올 때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부딪히고, 승강장 주변은 버스와 택시가 엉켜 출퇴근 시간엔 난리도 아니다”고 말했다. 합정역 중앙차로는 지난 3월 기존 정류소가 폐쇄되고 임시정류소가 마련됐다. 임시 정류소의 폭은 2m 남짓이다. 최근 시작한 장마에 우산을 받쳐든 승객이 많아지면서 더 혼잡해졌다.

불편을 겪는 것은 ‘뚜벅이’ 시민들뿐만이 아니다. 택시들도 아우성 친다. 개인택시기사 김모(70)씨는 “독립문 인근의 스마트쉘터 공사장은 1개 차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병목현상으로 고생한다”며 “버스 정거장이 버스 정거장이지, 당최 무슨 대작을 만들겠다고 이런 공사를 벌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버스 기사도 불만인 것은 마찬가지. 602번 버스 운전기사 장현(43)씨는 합정역 임시정류소를 통과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장씨는 "좁은 임시 정류장에 사람들이 밀려서 차도로 나온다”라며 “사람 칠까 무서워 죽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아담하던 버스정거장이 대형 철골 구조물로 바뀌는 데에도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시민도 있었다. 숭례문 인근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박모(48)씨는 “어떤 각도에서 보면 숭례문을 압도하는, 중국에서나 볼법한 버스정거장이라 흉물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태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데 있다. 스마트쉘터는 그 운영비를 광고운영사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설계됐지만, 서울시는 2019년부터 시내 버스정거장 광고사업자인 JC데코와 벌이고 있는 법적 분쟁으로 운영사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JC데코는 프랑스계 업체로 세계 최대 옥외광고운영사로, 2003년 버스정류소 230개에 대한 광고운영권을 땄다. 2019년 5월 계약 종료 뒤 서울시가 새 사업자를 입찰을 통해 선정하려 하자 2003년에 맺었던 '계약상 우선협상권'을 근거로 입찰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뒤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적 소송으로 계획에 차질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연내에는 시민들이 스마트쉘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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