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공식 합류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 그룹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하면서 1964년 기구 설립 후 지위가 올라간 첫 나라가 됐다. 그간 한국이 경제 규모 확대에 따라 적지 않은 원조를 해온 만큼 실질적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국제적 역할에 맞는 위상을 평가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4일 외교부에 따르면 UNCTAD는 앞서 2일(현지시간)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아시아ㆍ아프리카 회원국이 모인 그룹A에서 선진국 회원에 해당하는 ‘그룹B’로 변경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정부는 한국의 선진국 그룹 편입을 무역ㆍ투자 역량과 다자체제에 대한 정책ㆍ행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자평한다. 특히 과거에 비해 훌쩍 높아진 대외적 위상과 국제적 영향력을 ‘재확인’받은 성격이 짙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와 활발한 공적개발원조(ODA) 활동, P4G(서울녹색미래) 정상회의 개최 및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 사실상 선진국에 준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격은 떨어지는 불일치를 해소했다는 설명이다.
UNCTAD 말고도 회원국을 선진국과 개도국 기준으로 구분하는 국제기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있다. 하지만 경제ㆍ산업 규모 등에 근거해 의무와 역할을 규범화한 곳들이라 위상이 바뀌면 파급력이 만만찮다. 한국은 UNFCCC에서는 아직 개도국으로 분류돼 있지만, WTO에서는 2019년 10월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국제 무역에서 다소 불리한 입장이 된 것이다. WTO 개도국은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국내 생산품에 보조금 지급도 가능해 자국 산업 보호에 유리하다. 관세 인하 폭과 시기 조정에서도 선진국에 비해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반면 UNCTAD 지위 격상은 선언적 의미 외에 영향은 미미하다. 이 기구는 개도국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돼 기술협력 등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오래전부터 ‘주는’ 역할로 바뀐 우리나라는 달라질 게 없는 얘기다. UNCTAD 내 실무협상도 이미 이해관계가 맞는 그룹끼리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EU), EU를 제외한 기타 선진국 그룹(JUSSCANNZ), 77개 개발도상국 그룹(G77)+중국,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등이 중심이다. 가입 당시 G77에 속했던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탈퇴했고, 올해 1월부터는 기타 선진국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은 주로 ‘공여자’ 입장이라 A그룹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돼 있었다”며 “이제는 다른 선진국들과 대등한 위치에 오른 만큼 우리나라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