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73조는 산업재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조항으로 꼽힌다.
73조 1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재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발생한 경우, 산재 발생일로부터 1개월 내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2항에선 '지방고용노동청장으로부터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명령을 받은 경우 명령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이행한 때에는 제1항에 따른 보고를 한 것으로 본다. 1항에 따른 보고기한이 지난 후에 자진해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한 경우에도 같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업주가 산재 발생 1개월이 지나 고용노동부(고용부)로부터 산재 미보고가 적발되더라도, 15일 이내에만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산재 발생 1개월이 지났더라도, 당국에 적발되기 전에 자진해서 조사표를 제출해도 역시 문제가 없다. '1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법 조항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고용부는 영세 사업장은 산재 발생 보고 제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이런 예외 조항을 뒀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기업을 대상으로 산재 발생 보고의 중요성을 지도하고 홍보하는 건 고용부의 의무인데, 보고를 누락하는 기업에 정부가 앞장서서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착실하게 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기업만 '바보'가 되는데 누가 적극적으로 산재 보고를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선진국에선 산재 보고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독일은 4일 이상 휴업을 요하는 산재 또는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3일 이내(공휴일 포함)에 신고해야 한다. 재해를 당한 근로자도 신고서 사본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산재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도 진료 다음 날까지 상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보고 누락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안전장치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부상한 근로자의 휴업 기간이 4일 이상이거나 사망한 경우 2주 내에 근로자 사상질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휴업 기간이 3일 이내여도 3개월에 한 번씩 발생한 산재를 정리해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 1~3월 발생 사건은 4월 말까지, 4~6월 사건은 7월 말까지 제출하도록 지침을 두고 있다.
영국은 사업장에서 노동자와 자영업자, 하청 근로자는 물론이고 외부인이 다쳐도 산재로 인정한다. 보고 범주도 작업자의 비치사적 사고, 일반인의 비치사적 사고, 작업과 관련한 치사적 사고, 자주 발생하진 않지만 매우 위험한 산재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비치사적 사고는 15일 이내, 치사적 사고와 매우 위험한 산재는 10일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보고 양식도 일반 상해, 위험한 사건, 해양 상해, 위험한 해양 사건, 질병, 가스로 인한 화염 상해, 가스 공사에 의한 위험한 상해 등 7가지로 분류해, 물 샐 틈 없는 보고와 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오상호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2017년 작성한 '산재발생 보고실태 및 활용방안 연구보고서'에서 "보고 제도의 정립을 위해선 사고의 치사성, 심각도, 발생 빈도 등을 고려해 그에 적합한 보고 기준을 적용하는 영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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