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로 들어선 글로벌 전기차 업계에 주행거리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실제 해외 주요 전기차 업체들은 내연기관보다 더 긴 주행거리의 신차 출시 계획을 속속 발표하면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이에 반해 국내 전기차는 여전히 기대 이하의 주행거리로, 미래 전기차 시장 경쟁에서 후발 주자로 밀려난 모양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볼보자동차는 지난달 30일 스웨덴 코텐버그에서 ‘테크 모먼트’ 기술 발표회를 개최하고 2030년에 1,000㎞까지 주행 가능한 전기차 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현재 400~500㎞의 주행거리로 시판 중인 아이오닉5나 테슬라 모델Y 등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볼보차는 ‘1,000㎞ 전기차’를 위해 스웨덴의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와 협력한다. 스웨덴에 연구개발센터 설립에 합의한 양사는 배터리 셀 에너지 밀도를 지금보다 50% 이상 향상된 기술 개발에 들어간다. 현재 볼보차의 배터리 공급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셀 에너지밀도는 약 640Wh/L 수준이다. 볼보차는 이를 1,000Wh/L까지 높일 방침이다.
헨릭 그린 볼보차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배터리 셀의 설계와 통합을 단순화하는 것을 통해 무게는 줄이고, 공간을 극대화해 배터리 용량과 범위, 충전 시간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주행거리 경쟁에 합류했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전기 세단 ‘EQS’의 주행거리는 최대 770㎞로 알려졌다. EQS는 107.8㎾h 배터리와 무선 업데이트(OTA)를 지원하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탑재했다. 현재 시판 중인 전기차 가운데 가장 긴 주행거리는 테슬라의 ‘모델S 롱레인지’다. 1회 충전으로 최대 652㎞ 주행이 가능하다.
BMW도 올 연말 첫 번째 전용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iX’를 출시, 주행거리 경쟁에 동참한다. 1회 충전 시 최대 630㎞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전해졌다. 테슬라 대형 SUV ‘모델X’(580㎞)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GM의 경우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전기차 전용 플랫폼 ‘얼티움’을 개발, 현재 450마일(약 724㎞) 주행이 가능한 기술력을 보유했다. 향후엔 배터리 셀 에너지 밀도를 높여 최대 600마일(약 965㎞)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경쟁사에 비해 떨어진다. 국산 전기차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전기차 경쟁력은 주로 에너지효율(주행거리)과 충전속도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현재 국산 전기차 중 가장 긴 주행거리는 기아 ‘EV6’ 롱레인지의 475㎞다. 국제 기준으로 변환하더라도 510㎞에 불과하다. 현대차의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5’는 429㎞(국제 기준 480㎞)로, 더 짧다. 현대차그룹은 2년 내 대형 SUV ‘아이오닉7’의 주행거리를 50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경쟁사에 비하면 100~200㎞ 부족한 수준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최근 차세대 배터리 개발사인 미국의 '솔리드에너지'에 1억달러(약 1,136억 원)를 투자, 전기차 주행거리 향상을 노력 중이다.
국내 한 전기차 전문가는 “현대차그룹의 충전속도는 포르쉐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BMS 관리 기술이나 주행거리를 뽑아내는 기술력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전기차 주행거리는 단순히 배터리를 많이 장착하는 것을 넘어 열과 에너지 관리 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대차그룹도 관련 기술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