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말이다. 평안, 안전, 무사와 비슷한 말이고, 위험, 불안의 반대말이다. ‘안녕, 평안, 행복’과 같은 말은 쉽고도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느낄 평안이란 어쩌면 동생과 늘 하던 방 다툼에서 잠시 해방된 날이거나, 보고서나 시험이 끝난 한가로운 저녁을 뜻한다. 그렇지만 전쟁 중에 평안은 오늘 밤 지붕 위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고서 무사히 아침을 맞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무서운 밤도 전제에 따라 ‘평안’이 되다니, 가히 모순적이다.
전 세계에 7,000개 이상의 언어가 있다는데, 그중에는 극한 상황에서야 알게 되는 평안이나 행복을 이르는 말이 적지 않다. 일 년 내내 혹한을 견디는 북극해 연안 지역에는 ‘아요르나맛(ayurnamat, 이누이트어)’이 있다. 어쩔 수 없거나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평안을 뜻한다. 또한 연평균 3도에다가 햇빛조차 보기 힘든 어떤 지역에서는 ‘그저 날씨가 좋아서 쉬는 날’이라는 ‘솔라르프리(solarfri, 아이슬란드어)’가 있다. ‘마른 땅 위의 비 냄새’라는 ‘페트리커(petrichor, 영어)’는 흙냄새만을 뜻하지 않는다. 완전히 메마른 땅에 오랜만에 내리는 비는 건기를 견딘 이들에게 평안을 준다. 전쟁을 치르고서 일상을 되찾은 이들도 그러하다. 덴마크는 19세기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영토와 인구의 3분의 1을 잃었다. 밖에서 많은 것을 잃은 덴마크는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이라는 ‘휘게’(hygge)를 찾아냈고, 이 문화는 덴마크가 서로를 지켜주며 복지 국가가 되는 데 기여했다.
한국말에는 ‘안녕’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안녕’도 실은 견뎌야 할 위험이나 불안한 상황이 전제된 무시무시한 말이다. 얼마 전 코스타리카 국영방송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송출했다. 진행자는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말 ‘안녕하세요?’가 혼돈의 역사와 전쟁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인이 서로를 챙긴 말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는 시간대나 친밀도를 막론하는 인사말이라 외국인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고, 습관적으로 쓰는 한국인에게는 이미 무덤덤한 말이다. 이 ‘안녕’이 어제를 잘 살아내고 오늘을 맞은 것을 서로 격려하는 말임을 먼 나라의 시선에서 배운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긴 7월, 지금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안녕’의 의미를 담아 인사를 건네 보자.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