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지스 원장의 대담한 제안

입력
2021.07.04 17:00
26면
어느 쪽이 국민을 더 이롭게 하는가
미중관계 적대적 악화 피하려는 구상
미국도 무시하기 어려운 울림이 있어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의 왕지스(王緝思) 원장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미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국내 질서를 흔들지 말고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존중하자, 그러면서 ‘어느 쪽이 국민을 더 이롭게 하는지’ 경쟁해 보자는 것이다.

왕지스는 중국의 대표적 전략가다. 2012년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로 중국의 대양진출을 막아서자, ‘그러면 우리는 서쪽으로 간다(西進)’고 하면서 시진핑 외교의 간판이 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개념화했다. 또한, 미국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국의 발전에 관건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미국의 대표적 외교전문지에 내놓은 제안이니, ‘개인 의견’으로만 보아 넘기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담하고 전략적인 구상이다.

21세기 들어 미중관계가 두 번째 변곡점에 들어선 듯하다. 첫 번째는 2001년 9월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대한 알카에다의 테러공격이었다. 그해 1월 취임하여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던 부시 대통령은, 9·11 사건이 터지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는 아프간과 이라크로 정책의 초점을 옮겼다. 이듬해 11월 제16차 당 대회에서 장쩌민 총서기는 ‘21세기 초 20년이 중국의 전략적 기회’가 된다고 했다. 미국이 중동에 묶여 있는 동안 경제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이 기회를 잘 활용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민족주의적 자신감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동중국해에서 중국 어선 선장을 나포한 일본에 희토류 공급을 중단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왕지스는 줄곧 중국이 조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경계했다. 국내 발전이 우선이며,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한 중국은 미국을 위협으로 특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2년 차에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고, 지금은 왕지스가 말한 ‘적’으로 간주하기 직전에 와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초 중국을 ‘가장 심각한 경쟁자’라 불렀다. ‘적’이라 하지는 않았지만, 번즈 CIA국장과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대사 같은 이들은 이미 중국을 ‘적’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왕지스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당장은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첫째,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차이를 분명히 지적한다. 특히 인권 인식에서 양립하기 어려운 차이를 본다. 둘째, 내년 10월 제20차 당 대회를 앞둔 시진핑 주석도, 그 다음 달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도 물러설 정치적 공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부가 국민을 더 이롭게 하는지’ 견주어 보자는 말에는 울림이 있다.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는 미중경쟁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체제의 지속력이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중국은 인구절벽과 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복지 수요증대 등 만만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당 총서기 연임 제한 철폐도 양날의 칼이다. 안정적 국정 운영을 기할 수 있지만, 권력 승계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이 아니더라도, 인종 갈등, 정치 분열, 경제적 불평등 등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지속력을 입증해야 할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

이래저래 미국은 지금 건국 후 가장 강력한 적수를 만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중국공산당 100년, 왕지스가 던진 체제경쟁 제안이 미중 대립의 틀을 바꾸는 단초가 될지 궁금하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