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여사·BTS의 전도... "밀림에서 판다고?" 54년 호미 인생의 반전

입력
2021.07.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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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호미 돌풍' 석노기 호미 장인

김정숙 여사와 그룹 방탄소년단은 '호미 전도사'다. 외교와 음악으로 농기구인 호미를 세계에 전파했다. 두 호미 전도사가 선택한 호미엔 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영주대장간 석노기 장인'.

"외교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퀵으로 호미 몇 자루만 보내 달라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영부인이 해외 순방 때 쓰려고 한 줄은 몰랐죠." 지난 7일 전화로 만난 석노기(67)씨가 웃으며 말했다.


2018년 경북 최고 장인에 선정된 석씨가 만든 호미는 '한류 호미'다. 2019년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원예용품 톱10에 들며 시장을 주름잡았다. 석씨는 "처음엔 아마존이라고 해서 밀림인 줄 알았다"고 했다. 방탄소년단 멤버인 RM이 미국 유명 래퍼 닐 나스 엑스의 '올드 타운 로드'를 리믹스한 '서울 타운 로드'를 발표한 게 폭발적 호기심의 땔감이 됐다. 곡에서 RM은 "내겐 호미가 있어. 들어는 봤니? 한국에서 온 철로 만든 건데, 최고야. 호미로 옥수수도 캐고 너네 뒷마당 돈도 캘 거야"라고 영어로 랩을 한다. 'ㄱ'자로 꺾인 모양의 작은 농기구가 없는 서양에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삽이나 쇠스랑 정도만 쓰던 외국인들은 호미를 사용한 뒤 '지금까지 난 땅을 어떻게 판 거냐'며 허탈해했다. 석씨는 지난해 아마존에서 호미 3,000개를 팔았다. 그는 "아마존에 1,000개를 보내야 하는데, 그 작업을 지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씨는 영주에서 54년째 호미를 만들었다. 매형의 대장간에서 열네 살부터 일한 게 시작이었다. 친구들이 가방 들고 중학교 다닐 때 석씨는 대장간으로 향했다. 석씨는 "허기져 일을 못 할 때도 있었고, 한여름엔 소금 갖다 놓고 조금씩 먹으면서 불에 달군 쇠를 두들겼다"며 "낙오자는 되지 말고 기술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했다. 그는 오른손을 제대로 펼 수 없다. 어려서부터 반평생 넘게 쇠를 쥐고 살다 보니 그렇게 손이 굳었다고 한다. 그런 석씨를 만나러 지난 주말엔 뉴질랜드에 사는 외국인이 대장간으로 찾아왔다. 호미 현지 판매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갔다. 석씨의 호미가 점점 입소문을 탈수록, 그의 걱정도 커졌다. 통화가 계속되자 그의 목소리는 어두워졌다.

"후계자가 없으니까. 당장 일꾼도 없고. 젊은 친구가 대장간에 있는데, 당장 이번 여름이나 날라나 걱정이에요. 맥이 끊어져 가니까"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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