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영국에서 시작된, 그리고 지금은 BMW 그룹에 속한 ‘롤스로이스’를 떠올리게 된다.
거대한 체격과 대담한 디자인, 그리고 압도적인 고급스러움으로 이목을 끄는 롤스로이스의 차량들은 ‘고급스러움’을 떠나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감, 그리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을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는 과연 어떤 역사와 과를 품고 있을까?
두 사람의 만남, 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의 영문 표기는 ‘Rolls-Royce’다. 한 번에 이어 쓴 것이 아닌, ‘두 단어를 구분 짓는 작명’은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가 ‘두 존재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분 업자의 자녀로 증기기관차 제작, 전기회사 등의 이력 등을 보유한 헨리 로이스(Henry Royce)는 자신이 구입한 차량에 대한 불만을 품고 고심 끝에 자신이 직접 자동차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맨체스터의 한 공장에서 자신의 첫 자동차 ‘로이스 10’을 제작한다.
그리고 이 소문은 재력가의 자녀이자, 자동차 딜러로 활동 중이던 찰스 롤스(Charles Rolls)에게 알려지고, 그 길로 찰스 롤스는 헨리 로이스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롤스-로이스’가 설립되어 ‘역사’가 시작되었다.
성공적인 롤스로이스의 시작
롤스로이스의 브랜드 출범 이후, 롤스로이스는 꾸준한 차량 개발을 통해 1906년, 기존의 30마력 사양보다 우수한 성능을 제시하는 ’40/50′ 모델을 시장에 선보이게 된다. 워낙 우수한 성능을 갖췄을 뿐 아니라 마케팅 부분에서도 ‘실버 고스트’라는 별칭을 바탕으로 차량의 매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데뷔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은 40/50은 단종까지 6,000대의 판매 실적을 올리며 롤스로이스가 영국 및 글로벌 시장에 연착륙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롤스로이스 역시 지속적인 차량 생산과 개발을 얻을 수 있었다.
영국 정부에서도 이러한 롤스로이스 차량의 우수성, 기술적 완성도 등을 높이 평가, 제1차 세계대전에 사용되는 항공기의 엔진 제작을 요청했다. 이에 롤스로이스는 전쟁 동안 ‘이글 시리즈’ 항공기 엔진을 제작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롤스로이스는 조금 더 합리적인 존재, ‘트웬티’를 시장에 투입하며 ‘단일 차종 정책’을 벗어나 보다 큰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25년에는 ‘롤스로이스’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신형 40/50 모델, ‘팬텀’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미래를 제시했다.
전쟁에 다시 휘말린 롤스로이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롤스로이스는 성실히 ‘브랜드 복원’ 그리고 발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1931년에는 벤틀리 브랜드를 인수하며 더욱 큰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의 영국 정부의 지원까지 더해져 ‘항공기 엔진’ 부분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과 전 세계는 다시 한번 전쟁의 포화 속에 휩싸이게 되었고 롤스로이스는 다시 한번 전쟁을 위한 ‘항공기 엔진’ 및 군수물자 관련 생산에 집중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롤스로이스는 이 과정에서도 ‘생산력 향상’을 이뤄냈고, 연합군의 승리라는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브랜드의 날개를 편 롤스로이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생산 설비를 새롭게 이전, 확장을 하고 난 후 영국 내 다른 차량 셍산 업체 및 코치 빌더 등을 인수하며 생산 다양화에 나섰다.
이와 함께 파워트레인에 있어서도 디젤 사양을 새롭게 도입해 4기통 사양부터 8기통까지 다양한 디젤 모델들 시장에 투입, 고객 선호에 대응할 뿐 아니라 롤스로이스의 ‘판매량’을 한층 끌어올렸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60년대까지 실버 던 모델과 실버 클라우드 등과 같은 다채로운 존재를 선보였고 더욱 대담한 존재감을 제시하는 ‘실버 쉐도우’ 역시 1965년에 데뷔하여 더욱 다채로운 매력을 제시했다.
위기 끝에 맞이한 BMW 그룹
하지만 성장세에는 악재가 따르는 법, 기술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롤스로이스의 엔진 사업부의 경영 약화로 인해 롤스로이스 그룹 전체가 위기를 겪게 되었다. 게다가 롤스로이스 엔진 사업부의 위기로 인해 영국은 물론 미국 경제에 타격이 예상되었다.
결국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경쟁력이 급락한 롤스로이스에 대한 ‘국유화’를 택하게 되었다.
다만 이후 이어지는 영국 내 국영 기업에 대한 민영화 정책으로 롤스로이스는 다시 한 번 영국의 군수업체 비커스의 산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참고로 이 시기, 벤틀리 역시 비슷한 흐름을 통해 브랜드의 계보를 지킬 수 있었다.
비커스는 1988년, 롤스로이스 자동차 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으나 BMW와 폭스바겐이 모두 인수를 희망하며 경쟁을 하게 되었다. 두 그룹 모두 인수를 포기하지 않고 ‘차량’과 ‘상표권’을 나누어 가져가며 갈등은 상당히 크게 지속되었다.
그러나 결국 BMW가 벤틀리 부분을 제외하고 롤스로이스 브랜드를, 폭스바겐은 롤스로이스를 포기하고 벤틀리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으로 하여 롤스로이스의 짧은 벤틀리와의 공존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100년의 역사, 그리고 새로운 시작
BMW 그룹에 속하게 된 후 롤스로이스는 100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고, 다시 한번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BMW 역시 럭셔리 모델에 대한 자부심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클래식 롤스로이스’의 현대적인 해석을 연이어 제시했다.
21세기의 롤스로이스는 팬텀과 팬텀 드롭헤드 쿠페를 주축으로 앞세워 럭셔리 시장의 소비자들을 집중시켰을 뿐 아니라, 고급스러움을 그대로 유지하며 더욱 젊은 소비자들을 위한 고스트와 레이스 그리고 오픈 에어링 모델 ‘던’을 선보이며 시장의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다.
더욱 커지는 대한민국의 존재감
21세기의 롤스로이스에 있어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상당했다.
지난 2003년 대한민국 시장에 진출한 롤스로이스는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오며 국내 럭셔리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에 롤스로이스 측에서는 지난 2018년, 국내 진출 15주년을 장식하는 스페셜 에디션, 롤스로이스 던(DAWN) 청담 에디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더불어 2019년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대한민국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고객 맞춤형 비스포크 공간인 ‘롤스로이스 부티크’를 전 세계 최초로 서울에 오픈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일반적인 전시장’이 아닌 고객중심형 복합문화 공간의 개념을 제시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롤스로이스 CEO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Torsten Müller-Ötvos)가 참석해 “한국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곳 중 하나였고 연간 판매량이 최초로 세 자릿수를 돌파한 시장이다”라며 “이번 부티크 오픈은 롤스로이스 모터카 서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며 높은 기대감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전 세계 단 35대만 한정 생산, 판매되는 특별 모델,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컬렉션’을 전시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차량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카시오페이아 실버 차체에 짙은 금색의 라인을 씌우고 92.5%의 은과 기타 금속을 조합한 환희의 여신상을 품어 더욱 매력적인 감성을 제시했다.
한편 몰스로이스는 2019년, 특별한 성과를 이뤄냈다.
바로 브랜드 최초의 SUV인 롤스로이스 컬리넌을 앞세워 ‘전 세계 5,152대’라는 판매 실적을 달성, 롤스로이스 여대 최고의 실적을 이뤄내는 거대한 방점을 찍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실적에는 시아, 싱가포르, 일본, 호주, 카타르 및 대한민국 등의 성장이 이어지며 ‘내실’ 또한 견고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100년이 넘은 역사의 화려함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선보이게 될지, 그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