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나자 도망친 이승만 정부, 왜 수십만 민간인을 학살했을까

입력
2021.07.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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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전쟁이다. 공식 조사에 따르면 남한에서 전사자는 국군과 유엔군을 합쳐 17만여 명인데 민간인 사망자는 100만 명에 이른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민간인 사망 비율이 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보다 높다는 점이다. 민간인 사망자 가운데는 놀랍게도 이승만 정부가 학살한 남측 양민의 수가 적지 않다.

북한을 상대로 싸워도 시원찮을 판에 이승만 정부는 왜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민간인 학살에 나섰을까. 명목상으로는 좌익세력을 처단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이념과는 전혀 무관한 농민들까지 닥치는 대로 사살하는 기이한 만행도 이어졌다. 한국일보 논설실장을 지낸 저자는 지난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본보에 관련 글을 기고하면서 6ㆍ25전쟁의 미스터리를 파고든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주홍글자'의 저술에 나섰다.

이승만 정부가 저지른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은 국민보도연맹과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 정권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등록시켜 정부가 ‘보호’하고 ‘선도’하겠다고 만든 조직이다. 실제로 초기엔 전향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조직이 확대되면서 좌익과 관련 없는 국민들이 대거 가입됐다. 경찰의 미움을 사 강제로 가입된 경우도 있었고 쌀이나 보리, 비료를 준다는 말에 속아 가입한 사람도 많았다.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연맹원을 소집해 닥치는 대로 구금했고, 북한군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하는 사이 전국 곳곳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희생자 수는 수만 명에서 2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국민방위군 사건도 충격적이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 중 부족한 군 병력을 늘리기 위해 청년들을 국민방위군으로 징집한 뒤 이들을 방치해 굶주림과 추위, 질병으로 사망하게 했다. 군이 거액의 예산을 받아놓고도 수뇌부부터 하급 장교까지 조직적으로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착복하는 사이 사망자는 5만~9만 명에 이르렀고 동상으로 신체 일부를 절단한 사람은 20만 명이 넘었다. 두 사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한강교를 터트리고 도망간 뒤 서울 수복 후 돌아와선 발이 묶여 피란을 못 간 서울 시민들을 부역자로 몰아 처단했다.

저자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점 투성이인 한국전쟁의 부조리와 미스터리를 다양한 사료와 사건 관계자 및 희생자 유족의 증언을 그러모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참담해지는 건 역사에 오점을 남긴 장본인들과 자손들이 당당하게 사회 기득권 세력으로 남아 있는 동안 희생자들의 고통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휴전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이란 걸 실감하게 해주는 저술이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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