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배우에 사탄 숭배 집단? 음모론의 진실은

입력
2021.07.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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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넷플릭스 '샘의 아들들: 어둠 속으로'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1976년 7월 29일, 뉴욕 브롱크스의 자동차 안에서 데이트를 하던 연인이 괴한에게 총격을 받는다. 무기는 44구경 리볼버. 같은 방법으로 1977년 7월 31일까지 6명이 살해되고, 9명이 상해를 입는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경찰에게 보내는 편지를 현장에 남겼고, 뉴욕 데일리뉴스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샘의 아들'이라고 칭했다. 1977년 8월 10일, 범행현장의 주차 위반 범칙금 납부 스티커를 단서로 20대의 데이비드 버코위츠를 체포한다. 버코위츠는 2건의 살인과 5건의 살인미수를 유죄로 인정했고, 총 365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도 버코위츠는 복역 중이다.

'샘의 아들들: 어둠 속으로'는 1970년대 뉴욕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연쇄 살인이 이어지자 1년간 뉴욕 거리에서 데이트를 하는 연인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고, 여성 희생자들이 긴 머리라는 말이 퍼지자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해가 지면 거리에 나가는 일도 줄었다. '샘의 아들'이 벌인 연쇄 살인은 특이했다. 데이트를 하는 연인에게 이유 없이 총격을 가했다. 오로지 총격만 있을 뿐 성적인 행동이나 다른 폭행은 없었다. 체포된 버코위츠는 이웃집 개의 지령을 받아 살인을 했다고 주장했다. 악마의 하수인인, 천년을 살았다는 개. 누가 들어도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샘의 아들' 수사에 총력을 기울인 뉴욕 경찰은 버코위츠를 체포한 후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대규모의 자체 포상이 있었다. 재판에서는 단독범행이 인정됐다. 하지만 탐사보도 기자인 모리 테리는 믿지 않았고 공범이 있다고 확신했다. 단독으로 '샘의 아들' 사건을 파고든 테리는 배후에 사교 집단이 있다는 단서를 잡은 후 검찰에 정보를 제공했다. 여전히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모리는 10여 년 동안 '샘의 아들' 사건에 매달렸고, 1987년 '궁극의 악'이라는 책을 발표한다.

'샘의 아들들: 어둠 속으로'는 모리 테리의 주장을 검증한다. 당시 뉴욕 시민이라면 모두 버코위츠의 범행에 관심이 있었지만, 테리가 더욱 흥미를 느낀 것은 버코위츠가 살던 용커즈 지역이 자신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라난, 평범하고 다정한 이웃이 있는 마을에서 끔찍한 살인자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사건을 조사하던 테리는 버코위츠가 이웃집에 사는 샘 카의 아들들과 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개를 키웠다. 어쩌면 편지에서 언급한 샘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 인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초기에 살인범을 목격한 사람들이 말한 인상착의는 버코위츠와 달랐다. 현장에서 노란 폭스바겐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도 있었다.


테리는 용커즈의 언터마이어 공원에 모였던 젊은이들에게 주목한다. 공원의 폐허가 된 건물 벽에는 기묘한 상징들이 그려져 있고, 동물의 사체도 있었다. 지역 경찰은 공원에서 악마 숭배 집회 같은 것이 열렸다고 말한다. 수사를 진행하던 중 테리가 찾고 있던 샘의 두 형제가 모두 죽어버린다. 하나는 자살, 하나는 교통사고. 수상하다고 생각한 테리는 그들의 주변을 샅샅이 훑는다. 그리고 더 큰 흑막을 발견한다. 바로 악마 숭배 집단이다.

이쯤 되면 음모론이다. 할리우드의 스타인 톰 크루즈가 신도이며, '배틀필드 어스' 등을 쓴 SF 작가 론 허버트가 창시한 사이언톨로지에서 파생된 '최후 심판의 프로세스 교회'라는 것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프로세스 교회는 종말론적 아이디어를 내세워, 기술과 문명을 벗어나 자연으로 회귀하며 중산층을 제거해 세상에 혼란과 파멸을 가져오자고 주장했다. 일본의 옴 진리교가 했던 주장과도 비슷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소재인, '차이나타운'과 '악마의 씨'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인 샤론 테이트를 살해한 찰스 맨슨 일당이 프로세스 교회와 관련되었다는 단서도 있다. 프로세스 교회는 '샘의 아들'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74년에 해체했다고 하지만, 신도였던 이들이 비슷한 사교 집단을 여기저기에 퍼트렸다고 한다. 버코위츠와 동네 친구들이 언터마이어 공원에 모여 프로세스 교회의 의식과 비슷한 행위를 했다고, 테리는 주장한다.


더 있다. 찰스 맨슨은 자기 집단을 패밀리라 불렀고, 버코위츠의 친구들은 스스로 '칠드런'이라고 불렀다. 한 제보자는 버코위츠가 저지른 마지막 범행의 스너프 필름이 있다고 한다. 살인 장면을 찍었다는 사진가 론 시스먼은 몇 년 후 핼러윈 날에 살해당했고, 뭔가를 수색한 듯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론 시스먼과 친밀한 사이였다는,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코튼 클럽'의 제작자인 로이 레이딘 역시 얼마 뒤에 살해당했다. 악마를 숭배하는 사교집단을 추적하던 테리는 1974년 스탠퍼드 대학의 교회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에까지 이른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 '그들'이 있다는 것이다.

테리 모리가 발표한 '궁극의 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TV 방송에 나가서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하지만 대중은 사교 집단의 공포를 단지 두려움과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었다. 혼돈의 시대에 악마를 숭배하는 사교 집단을 고발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하나의 오락이 됐다. 테리의 책임도 있다. 테리는 너무 많은 단서를, 너무 밀접하게 연결시키며 거대한 음모론에 심취했다. 증거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증으로 단서들을 진실이라 주장하며 모든 것에는 감춰진 끈이 있다고 주장했다. 의심스러운 정황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물증은 없었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오류였다.


1993년, 모리 테리는 드디어 데이비드 버코위츠를 면회할 기회를 얻는다. 버코위츠는 테리의 주장을 몇 가지 확인한다. 공범이 있었고, 사교를 믿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증거는 말하지 않았다. 이미 죽은 샘의 아들 형제가 관련됐다고 말하는 정도다. 자신의 생명과 가족이 위협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한때의 장난 같은 것이었을까. 버코위츠가 모든 범행을 단독으로 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에 사탄 숭배와 소아성애, 포르노 등 모든 악행을 저지르는 사교 집단이 있다는 것을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테리는 모든 의심을 이어붙여 거대한 음모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완결성은 높지만 그렇기에 현실성은 오히려 낮아진다.


테리는 탁월하고 집요한 탐사 기자였지만 정밀하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언제나 진실은, 한두 개의 거짓 때문에 가려지고 퇴색한다. 그렇기에 기자는 막연한 진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개의 거짓을 솎아내는 일부터 해야 한다. 거짓 증거를 사실로 인정하기 시작하면 어느 것도 증명할 수 없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는 말이 있다. 너무 빠져들면, 결국 그것에만 사로잡힌다.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나의 주장으로 끌어와 거대한 음모가 완벽하게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버린다. 허상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